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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의 오늘과 내일]‘쌈닭 정책’으로는 안 된다

입력 | 2017-07-05 03:00:00


황재성 경제부장

국토교통부가 현재의 모양을 갖춘 건 1994년 12월 24일 건설부와 교통부가 통폐합되면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구현하겠다’며 두 부처를 합쳐 건설교통부를 만들었다. 이후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는 ‘국토해양자원 관리와 경제 인프라 지원 기능을 결합해 국토의 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건교부를 해양수산부와 합친 뒤 문패를 국토해양부로 바꿔 달았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국토부에서 해양수산부를 다시 떼어냈고, 이름도 국토교통부로 교체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23년간 19명의 장관이 배출됐다. 이번에 장관이 된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가 된다. 19명을 출신별로 보면 15명이 관료 출신이고 나머지는 정치인(3명)이거나 교수(1명) 출신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의 임기는 길지 못했다. 4대 이정무 장관(재임 기간 1998년 3월∼1999년 5월)만 평균에 가까운 1년 2개월을 재직했을 뿐 오장섭(7대·2001년 3∼8월) 김용채 장관(8대·2001년 8∼9월)은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은 취임(8월 22일)하고 15일 만인 9월 6일에 하차했다. 당시엔 민주당과 자민련이 연합해 정권을 잡은 뒤 건교부를 자민련 몫으로 배정했다. 그런데 이 연정이 깨지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최단명 장관이 됐다.

김현미 장관은 후보자로서 검증을 받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공격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많지 않은 정치인 출신 선배 장관 가운데 이정무 전 장관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통이 컸던 이 전 장관은 실무를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 대신 “실무는 내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차관을 중심으로 실무자들이 책임지고 하되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실제로 그는 부처 현안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릴 때면 청와대와 여의도로 달려가 해결해 줬다.


특히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중단하고 인천국제공항을 반으로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나오자 이에 맞서서 원안대로 처리하도록 밀어붙였다. 그 결과 KTX와 인천국제공항이 현재의 모습대로 존재하게 됐다. 이 때문에 당시 관가에선 “관료 출신보다도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 일하기에 훨씬 낫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서민 주거 안정과 함께 도로, 공항, 댐, 철도 등 각종 국가 기간시설(SOC) 확충과 관리를 전담한다. 이들 사업은 대부분 구상하고 계획을 세운 뒤 실행에 옮기기까지 평균적으로 10∼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사업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에서 하급직 관료로 출발해 잔뼈가 굵은 경우가 아니면 업무를 파악하는 데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티가 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게 주택 정책이다. 정책을 제대로 펼쳐 주택시장이 안정되면 당연한 거고,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떨어져 시장이 불안해지면 모두 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됐다는 멍에를 뒤집어쓰기 일쑤다.

김현미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여성 장관인 만큼 따뜻하게 껴안고 세심하게 보살피는 주거·교통 정책을 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취임 일성으로 내건 ‘투기와의 전쟁’ 선포에서 기대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가 많다. 과장된 수치를 앞세워 정책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정책 부처의 수장이라기보다 ‘쌈닭 의원’의 결기만 느껴졌다. 경제 정책은 전투하듯 때려잡기 식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부작용이 그만큼 커질 수 있어서다. 김현미 장관이 이 점만은 꼭 기억해 두길 당부한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