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핵탄두 소형화? ICBM? 한미, 금지선 명확히 정의 안해… “모호해야 오히려 억지력 커” 분석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언급한 ‘레드라인(금지선)’이란 용어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때마다 각국 정상들이 대북 강경 메시지를 내놓으며 단골로 사용하는 ‘레토릭’이다.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4월 28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후 5월 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레드라인을 긋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행동해야 한다면 행동하겠다”고 북한에 경고장을 보냈다.
하지만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나 핵탄두 소형화 성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이 레드라인의 조건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한미 당국은 이를 명확히 정의한 바 없다.
ICBM 발사가 현실화되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레드라인의 기준을) 콕 집어 얘기하긴 어렵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직 핵무기와 ICBM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또 레드라인을 분명히 하면 ‘설정된 한계 외의 방식이나 설정된 한계 전까지는 무력도발을 해도 무방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재임 중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를 움직이거나 화학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했지만 선을 넘은 시리아 정권에 보복 공습을 감행하지 않아 오히려 역풍을 맞은 전례가 있다. 한 외교 관계자는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면 재래식 무기 사용은 용인하는 것이냐’와 같이 역으로 빌미를 주는 레드라인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