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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양종구]한국육상 지도자들의 착각

입력 | 2017-07-06 03:00:00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2009년 2월 자메이카 킹스턴에 취재를 갔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한국 남녀 단거리 대표팀이 ‘단거리의 나라’ 자메이카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당시 남자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자메이카의 영웅 우사인 볼트가 자국 대회 400m에 출전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종목을 전향하지 않고 100m와 200m 선수들이 400m에 출전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볼트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는 비시즌에는 몸을 만들기 위해 400m 훈련을 하고 대회도 출전한다”란 답이 돌아왔다. 볼트는 그해 8월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또다시 100m(9초58)와 200m(19초19)에서 경이로운 세계기록을 세웠다.

볼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100m(9초69)와 200m(19초30)에서 동시에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만 해도 그 원동력이 196cm의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통 키가 크면 스피드가 떨어지는데 볼트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신체 조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를린 이후 신기록 행진은 멈췄지만 볼트가 100m와 200m에서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잘 달린 배경에는 400m 훈련이 있었던 셈이다.

지난달 27일 남자 100m에서 10초07의 한국신기록을 세운 ‘한국 단거리의 희망’ 김국영(광주광역시청)도 400m 훈련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줬다. 김국영은 지난 겨울훈련 때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달리는 훈련에 집중했다. 심재용 광주광역시청 감독은 “국영이가 스타트는 좋은데 중반 이후 급격히 스피드가 떨어지는 약점을 보여 400m까지 전력 질주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한국기록 경신의 힘은 400m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성봉주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트레이닝 방법론에 과부하의 원리가 있다.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으면 100m와 200m는 더 쉽게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 훈련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2004년 3월 한국 단거리 유망주를 지도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의 단거리 대부 미야카와 지아키 도카이대 교수도 볼트 훈련법과 비슷하게 가르쳤다. 그는 한국 선수들에게 300m 전력 질주를 20회씩 시켰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미야카와 교수는 당시 아시아기록(10초 F) 보유자 이토 고지와 10초10을 기록한 스에쓰쿠 신고를 키운 명지도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1979년 서말구가 세운 10초34의 한국기록을 깨기 위해 미야카와 교수를 특별 초빙했다. 기존 훈련법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은 미야카와 교수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도자들도 그의 지도법을 무시했다.

국내에서는 ‘100m 선수가 달릴 수 있는 최장거리는 100m’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00m만 잘 달리면 되지 왜 더 달려야 하느냐는 인식이 아직도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 방송 해설가는 “한국 육상 지도자들은 30년 전 지도방식을 아직도 고수하며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국영은 2010년 10초23으로 서말구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5년 뒤 10초16의 한국기록을 세웠다. 이번엔 2년 만에 한국기록을 갈아 치웠다. 김국영이 400m 훈련을 더 빨리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김국영과 심재용 감독은 지도자들이 공부해야 기록도 단축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한국 육상은 강세를 보이던 마라톤에서도 오랫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육상이 후진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