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볼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 100m(9초69)와 200m(19초30)에서 동시에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을 때만 해도 그 원동력이 196cm의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통 키가 크면 스피드가 떨어지는데 볼트는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신체 조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베를린 이후 신기록 행진은 멈췄지만 볼트가 100m와 200m에서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잘 달린 배경에는 400m 훈련이 있었던 셈이다.
지난달 27일 남자 100m에서 10초07의 한국신기록을 세운 ‘한국 단거리의 희망’ 김국영(광주광역시청)도 400m 훈련의 중요성을 다시 보여줬다. 김국영은 지난 겨울훈련 때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달리는 훈련에 집중했다. 심재용 광주광역시청 감독은 “국영이가 스타트는 좋은데 중반 이후 급격히 스피드가 떨어지는 약점을 보여 400m까지 전력 질주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이번 한국기록 경신의 힘은 400m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성봉주 한국스포츠개발원 박사는 “트레이닝 방법론에 과부하의 원리가 있다. 300m와 400m를 전력 질주로 제대로 소화할 수 있으면 100m와 200m는 더 쉽게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00m 선수가 달릴 수 있는 최장거리는 100m’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00m만 잘 달리면 되지 왜 더 달려야 하느냐는 인식이 아직도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한 방송 해설가는 “한국 육상 지도자들은 30년 전 지도방식을 아직도 고수하며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국영은 2010년 10초23으로 서말구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5년 뒤 10초16의 한국기록을 세웠다. 이번엔 2년 만에 한국기록을 갈아 치웠다. 김국영이 400m 훈련을 더 빨리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김국영과 심재용 감독은 지도자들이 공부해야 기록도 단축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줬다. 한국 육상은 강세를 보이던 마라톤에서도 오랫동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육상이 후진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지도자들이 변해야 한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