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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내내 공수를 주고받는 야구는 수싸움의 연속이다. 상대의 심리를 꿰뚫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아야하는 종목이 바로 야구다. 그리고 이러한 수싸움의 첨단에 놓여있는 대목이 바로 ‘볼 배합’이다. 타자를 잡아내기 위한 투구 뒤엔 늘 볼 배합이 자리하고 있다. 포수 출신의 조범현 전 감독은 “투수가 던지는 볼 하나하나엔 목적이 있어야한다”면서 “볼 배합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와 기본적인 지식을 밑바탕으로 둬야 상황에 따른 효율적인 수싸움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복잡미묘한 볼 배합의 세계에 대해 야구기자 2년차 고봉준 기자가 묻고, 조 전 감독이 답했다.
Q :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주 역시 볼 배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대화에 앞서 몇 가지 자료를 요청하셨는데요.
A : 볼카운트에 따른 볼 배합을 말씀드리기 위해 최근 3년 볼카운트별 KBO리그 전체타자 타율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표를 통해 알 수 있듯 볼카운트에 따른 타율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타자가 몰리는 카운트에선 1할대 혹은 2할대 타율이 나오고 있고, 반대의 경우엔 무려 4할 넘게 타율이 치솟고 있습니다. 이는 곧 볼카운트 유·불리에 따라서 공 하나하나를 신중히 결정해야함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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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렇다면 볼카운트마다 공 하나가 지니는 의미가 클 듯한데요.
A :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엔 목적이 있어야합니다. 흔히 ‘목적구’라고 부르기도 하죠. 카운트를 잡는 공을 비롯해 승부구, 유인구, 위협구 등과 같이 투수는 공 하나하나에 목적을 갖고 임해야합니다. 우선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하는 공이 바로 초구입니다. ‘제1구는 생명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투수와 타자 모두에게 초구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투수는 볼카운트가 불리할수록 안타를 내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초구 스트라이크 여부는 더욱 중요합니다. 투수가 타자와 승부를 유리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선 유리한 볼카운트를 앞세워 맞춰 잡는 투구를 펼쳐야합니다. 그래야 긴 이닝 소화가 가능하고, 야수들의 수비시간 역시 짧아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는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1점을 막아내야 하는 위기의 순간에선 초구 스트라이크 여부보다 상황에 맞는 볼을 배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Q : 볼 배합과 스트라이크존(S존)의 상관관계 역시 궁금합니다.
A : 존에 대한 기본설명을 한다면 스윙존과 땅볼존, 타자기피존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스윙존은 타자의 방망이를 유도해서 헛스윙과 파울, 뜬공 등을 만들어내는 구역입니다. S존 상단에 빠른 공을 던질 경우 타자는 눈높이에 들어오는 공에 배트가 나오기 십상입니다. 결과적으로 범타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죠. 다만 이 구역에 공을 던질 땐 직구에 기본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구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타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죠. 반대로 병살타 등 땅볼이 필요한 경우엔 존 하단 땅볼존에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져야겠죠. 이와 더불어 투수는 타자기피존과 L존에 공을 던질 줄 알아야합니다. 타자가 안타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구역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존에 공을 던져야 불리한 카운트를 유리하게 바꾸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Q : 존에 대한 기본인식이 없다면 효율적인 볼 배합은 불가능하겠군요.
A : 당연합니다. 존에 따른 볼 배합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네요. 야구는 생각하는 스포츠입니다. 상대와 전력이 비슷하거나 상대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 이기기 위해선 늘 연구하고 생각해야합니다. 순간적인 직감은 기본적인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상으로 끝나버립니다. 볼 배합이 대표적인 예죠. 따라서 포수는 풍부한 경험은 물론 직감력과 예민함, 통찰력 등이 필수조건입니다. 이러한 면들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게임 전체를 읽을 수 있는 ‘대국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A : 포수를 기준으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화요일 주중 첫 경기를 앞뒀다고 했을 때 포수는 상대의 직전 3연전 혹은 6연전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타자가 최근 경기에서 어떤 구종과 코스를 쳤는지, 타구의 질과 방향은 어땠는지, 당시 상대 투수와 포수는 누구였는지 면밀하게 종합합니다. 데이터를 읽는 눈도 중요합니다. 타자 A와 타자 B가 똑같이 10타수 6안타를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라인드라브성 안타 혹은 텍사스성 안타처럼 타구의 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전력분석 데이터를 살펴보면 특정 코스에서 강점과 약점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포수는 타자가 약점을 보이는 곳을 숙지한 뒤 경기 중에 응용하면서 배합을 가져가야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평면적인 데이터도 도움이 되지만, 두 눈으로 영상을 확인해야 타자의 컨디션을 확실하게 체크할 수 있습니다. 포수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관찰력과 더불어 기억력을 키우기 위해선 메모하는 습관 등을 평소에 들여 체득해야합니다. 그래야 순간적인 수싸움을 펼칠 수 있고, ‘영리한 포수’가 될 수 있습니다.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