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이호준(오른쪽)과 모창민은 형제 같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다. 그러나 그동안 포지션 경쟁을 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과 마주해야했다. 은퇴를 앞둔 이호준은 10년의 기다림 끝에 빛을 보고 있는 모창민을 뜨거운 가슴으로 응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NC 모창민(32)은 2008년 대학을 졸업하고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SK에 입단한 거포 유망주였다. 당시 신인지명을 돌아보면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면 1차 지명 자원이 다른 해에 비해 흉작이었다. 2차 지명도 정찬헌(LG), 하준호(kt·당시 롯데 지명)만 모창민에 앞섰고 나지완(KIA), 임창민(NC·당시 현대 지명), 김선빈(KIA)등이 모두 후순위였다.
그러나 2008년 SK는 리그를 지배하던 강팀 중에 강팀이었다. 1군에 도저히 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호준은 광주일고 후배인 모창민을 아끼며 프로 적응을 도왔다. ‘물만 주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훈련을 한다’는 이색적인 평가 속에 모창민은 프로데뷔 첫 해 1군에서 91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곧 손에 잡힐 것 같던 1군 주전선수 자리는 1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얄궂게도 모창민은 ‘존경하는 선배’ 이호준에 가로막혀 유니폼을 바꿔 입은 후에도 오랜 시간 백업에 머물렀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팀은 하나로 똘똘 뭉쳐있어도 각 포지션에는 건강한 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아무리 친하고 같은 동문에 동향이라고 해도 주전 경쟁은 야구인생이 걸린 냉혹한 승부다.
지난 6월 9일 kt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모창민. 사진제공|NC 다이노스
모창민은 “10년을 모셨지만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겁고 배울 점이 많다. 깊이 있는 조언도 항상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NC 김경문 감독은 모창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외야 훈련까지 시키는 등 다른 포지션을 찾아주려 애썼다. 그러나 1루는 외국인 타자, 지명타자는 모창민의 멘토 이호준의 몫이었다. 3루는 박석민의 자리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 감독은 “올해는 모창민이 그동안 팀에 헌신한 보상을 받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며 이호준 대신 모창민을 주전 지명타자로 선택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모창민은 100타점 20홈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0년의 기다림은 모창민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모창민이 홈런을 치고 타점을 올릴 때마다 NC 덕아웃에서 가장 기뻐하는 건 이제 대타요원이 된 이호준이다. 선수로 마지막 시즌,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좋지만 10년을 함께한 모창민이 빛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