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첫 韓中정상회담 엇박자 속에 나온 ‘베를린 구상’

입력 | 2017-07-07 00:00:00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취임 후 처음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북한을 향해 6·15선언과 10·4선언으로의 복귀를 촉구하는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지금까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평가하지만 앞으로 중국이 더 많은 기여를 해줄 것을 요망한다”며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으나 시 주석의 동의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시 주석은 북한과 혈맹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충분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 국제사회가 중국의 노력 부족을 비난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시 주석은 미국의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시 주석은 “북핵 문제는 한국과 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의 문제로 파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북한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로 한반도 안보 패러다임이 바뀌었지만 중국의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지난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2321호)로 대북 제재가 훨씬 강화됐지만 올해 1∼5월 북-중 무역은 지난해보다 되레 늘었다. 시 주석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선 “중국의 정당한 우려를 중시하고 적절히 처리하기 바란다”며 배치 철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5일(현지 시간)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무력 사용은 옵션이 아니다”며 미국의 강경 대응책에 반발하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비롯한 대북 교역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을 통한 경제 봉쇄를 요구하며 이를 어긴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중국의 근본적 태도 변화 없이는 기고만장한 북한의 도발을 막기는 어렵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북한의 ICBM 도발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북한이 핵 도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엔 다른 선택이 없다”며 북한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완수라는 목표 아래 다양한 남북 교류 제안을 내놓았다. 당장 7·27 정전협정 체결일에 적대행위 중단을 선언하고 8·15 광복절에 민간 공동행사를 재개하며, 10·4선언 10주년이자 추석 명절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제안했다. 북한의 도발로 연설문을 대폭 수정했다지만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을 만날 용의가 있다”며 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비슷한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나쁜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북한을 향해 ‘매우 혹독한 조치’를 경고했다. 앞서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필요하다면 군사수단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ICBM 도발 직후 나온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자칫 동맹국인 미국과 국제사회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지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향후 대북 압박을 둘러싼 ‘한미일 대(對) 중러’ 간 대치전선이 형성된다면 북한은 이를 틈타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높다. ‘주도적 역할’을 자임한 문 대통령은 이런 고난도 외교전쟁의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그 시작은 동맹국과의 긴밀한 공조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미국은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공허한 수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