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페니란 이름이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면 한 번쯤 007시리즈를 봤다는 얘기다. 제임스 본드가 상관 M의 집무실에 찾아갈 때 꼭 만나는 여비서의 이름이 머니페니다. 매번 바뀌는 본드걸과 달리 머니페니의 경우 로이스 맥스웰이란 여배우가 35세에 처음 출연해 58세로 물러날 때까지 1∼14편에 연속 출연했다. 숀 코너리, 로저 무어 등 3명의 본드를 거쳐 20년 넘게 시리즈를 지켜온 장기근속을 통해 젊은 여비서는 관록 있는 조력자의 캐릭터로 변해 갔다.
▷영화가 아닌 역사 한 귀퉁이에 이름을 남긴 여비서들도 있다. 트라우들 융게는 1942∼1945년 히틀러의 마지막 여비서로 일한 경험을 회고록으로 남겼다. 올 1월 타계한 브룬힐데 폼젤은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여비서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독일인의 삶’에서 ‘그때’를 증언했다. 미국에서는 평범한 여비서 출신으로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된 사례가 있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주자로 뛰었던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가 주인공이다. 요즘 국내서는 한 장관 후보자가 예전에 여비서를 채용하면서 자격 요건을 ‘24∼28세 여성’으로 한정한 것을 두고 차별 논란이 빚어졌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