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대대로 써내려오다가 숟가락으로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질 즈음에 가마솥 바닥의 누룽지를 득득 긁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무나 감자 껍질을 벗길 때에도 한 귀퉁이가 닳은 놋숟가락만 한 게 없었다. … 손잡이가 달린 예쁜 반달이었다.(‘놋숟가락’) ― 안도현, ‘안도현의 발견’》
시인 안도현은 ‘안도현의 발견’에서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을 좋아하고, 햇빛이 미끄러져 내리는 나뭇잎의 앞면보다는 나뭇잎 뒷면의 흐릿한 그늘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나무, 꽃, 새, 물고기들과 함께 공동저자로서 생활 속에서, 기억 속에서, 사람 속에서, 맛 속에서, 숲속에서 발견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짧은 글을 썼으나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독백한다.
‘못 쓰게 되어 버린(버릴) 물건’이 쓰레기다. 그런데 생활 속의 쓰레기는 단순한 그런 존재가 아니다. 쓰레기는 많은 사연과 정보를 담고 있다. 쓰레기의 주인이 무엇을 먹고 입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심지어 쓰레기가 어떤 존재로 인식되었는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인 오늘 쓰레기는 땅속, 바닷속, 하늘까지 이미 가득 찼다. 스티로폼(분해되지 않음), 유리병(100만 년), 고기잡이 그물(600년), 일회용 기저귀(500년), 페트병(450년), 알루미늄캔(200년), 철깡통(100년), 건전지(100년), 나일론(40년), 일회용 종이컵(30년) 등은 신(新)십장생(十長生)이 되어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쓰레기의 생산자이지만 재생, 재활용 등으로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들의 정성 어린 손바느질로 탄생한 조각보는 한국 전통문화 상징의 하나이자 재활용의 산물이다. 자칫 별 쓸모없어 보이는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 그냥 버려질 쓰레기의 운명에서 환골탈태하여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결국 조각보는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업사이클의 선두 주자이며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는 귀한 예술품이자 문화유산이다. 앞선 선조들의 지혜는 쓰레기처럼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도 빛을 만들어 냈다.
쓰레기 특별전의 화두는 이 책의 ‘작고 나직하고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려진, 버릴 쓰레기를 재활용, 재사용, 업사이클하여 이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를 지키고 구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전시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