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號 대학개혁, 구조조정·거점 국립대 네트워크 구축 놓고 설왕설래
‘대학공공성강화를 위한 전국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등교육 재정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왼쪽). 이영 전 교육부 차관이 3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기본계획을 밝히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진행한 대학구조개혁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뉴스1]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한국대학학회장)의 평가다. 그에 따르면 ‘이화여대 사태’는 현재 한국 대학이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윤 교수는 그 배경에 “대학을 기업체처럼 관리, 통제하고 재정 지원을 미끼로 대학과 교수들을 길들여온 지난 정부의 대학 정책이 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이에 대한 개선을 약속했다. △대학재정지원 사업 개편 및 대학 자율성 확대 △대학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서열화 완화 및 경쟁력 강화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 및 육성 등 문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되면 국내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대학 안팎에서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건 강제적 정원 감축 방식의 대학구조조정을 이어갈지다. 현재 한국 대학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학생 수 감소다. 2017학년 현재 전국 대학(전문대 포함) 입학 정원이 약 56만 명인데, 연간 신생아 수는 40만 명 수준이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70%대인 점을 감안하면 대입 정원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023년까지 대입 정원을 40만 명으로 줄일 계획을 세웠다. 대입 정원 감축을 목표로 2015년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도 진행했다. 전국 모든 대학을 A~E 5개 등급으로 나누고 A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의 정원을 차등 감축하도록 했다. 이 정책으로 전국 대입 정원이 4만 명 이상 줄었다. 교육부는 현재 2주기(2018~2020년), 3주기(2021~2023년) 대학구조개혁평가 방침도 밝힌 상태다.
그러나 6월 27일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가 공동 성명을 통해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는 평가지표의 부당성과 획일성, 평가방법과 절차의 불공정성, 결과에 대한 신뢰 상실 등 총체적 실패작’이라고 비판하는 등 대학 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대학 규모가 과잉된 상황에서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어떤 방식으로 조정할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또한 수차례 ‘대입 정원 감축에만 초점을 맞춘 대학구조개혁이 대학의 학문 자유와 자치를 훼손했다’며 대안으로 ‘대학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바 있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대학별 특성에 맞게 지원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2015년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은 경기도 한 대학교의 텅 빈 강의실.[뉴스1]
이런 흐름을 타고 지방 국립대들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 등 전국 9개 거점 국립대는 최근 신입생 공동 모집, 캠퍼스 통합 등 다양한 인적·물적 교류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집에는 ‘국공립대 공동운영체제 구축’ ‘중·장기적으로 대학 네트워크 구축’ 등의 구상이 담겨 있다.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현장에서 시작된 셈이다. 현재는 9개 대학을 가칭 ‘한국대’로 통합하자는 의견부터 각 대학을 유지한 채 학점 교류를 확대하자는 주장까지 다양한 안건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 논의하고 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5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교육개혁 추진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10개 거점 국립대를 ‘한국국립대학(가칭)’이란 이름으로 묶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2년 법인화돼 더는 국립대가 아닌 서울대가 ‘국립대 네트워크’에 참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중론이다. 길게 보면 ‘서울대 폐지’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그에 대한 서울대 내부의 거부감이 크다. 거점 국립대들도 서울대 때문에 네트워크 추진 동력이 상실되는 것을 우려한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서울대를 논의의 변수로 삼는 것 자체가 일의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울대를 그대로 둔 채 그것을 위협할 만한 ‘한국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이 논의에 추가될 수 있는 쪽은 거점 국립대를 제외한 국공립대들이다. 김영철 전남대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국교련 회장)는 “거점 국립대만 연합해서는 우리나라 대학 서열화를 개선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전국 모든 국공립대를 대상으로 하는 큰 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국공립대 강화 움직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사립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사립대에 일정 비율 이상 운영비를 지원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영형 사립대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 자금을 받으면 사학재단이 자율성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이 정책의 1차 수혜 대상은 현재 재정난에 빠져 있는 사립대가 될 개연성이 높다. 이 때문에 “가만 두면 문을 닫을 대학을 세금을 투입해 살리는 것이 온당하냐”는 반론이 나온다. 그러나 한 사립대 교수는 “지방에 있는 규모가 작고 생존이 어려운 대학도 해당 지역에서는 경제활동의 중심이자 문화 공간으로서 적잖은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학을 가려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취업교육 또는 평생교육특성화 대학으로 재편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