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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전기차 위협하는 탈원전

입력 | 2017-07-10 03:00:00


허진석 산업부 차장

지금은 산업의 격변기다. 앞으로 10년을 더 탈 자동차를 사려고 하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성능과 디자인, 주머니 사정 정도만 고려하면 됐다. 지금은 에너지원까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볼보자동차는 최근 내연기관 신차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당장 2019년부터 볼보의 내연기관 신규 자동차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기존 차량은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10여 년이 더 지나면 세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에 던지는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다. 전기차로 출발한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포드자동차를 앞지른 것에 이어 전기를 에너지로 한 자동차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견고한 신호다.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인 카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1888년 프랑스에서 양산되기 시작한 지 131년 만의 일이다. 1903년 자동차가 도입된 한국은 116년 만에 맞는 신물결의 파도다. ‘말 없이 달리는 마차’의 시대가 ‘기름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구매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기가 대세인 것 같아 전기자동차를 선택하고 싶지만 순수 전기차는 아직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현대차의 아이오닉과 기아차의 쏘울, 르노삼성의 SM3ZE, 한국GM의 스파크와 볼트 등이 시장에 나와 있는 정도다. 최근 테슬라도 들어오긴 했다. 격변기 가운데 소비자는 이런 적은 종에서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폭은 좁지만 연료비가 적게 들어 마음이 흔들린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연료비가 10∼20% 수준이다. 아반떼1.6 휘발유가 연 157만 원의 유류비가 들 때 전기차 아이오닉을 사용하면 16만∼38만 원 정도면 된다.

근데 고민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전기차는 10년 정도 사용하면 배터리를 갈아야 하는 변수가 있다. 지금은 배터리가 전기차 제조원가의 30∼40%로 1000만 원이 넘는 가격대이지만 기술 발달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이 점도 살펴야 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바로 탈원전 이슈다. 전기차 선택 배경에는 친환경과 낮은 충전비가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에 이어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원전을 줄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전이 줄면 전기료가 인상될 공산이 크다. 1kWh를 생산하는 데 원전은 40원이면 되지만 신재생에너지로는 240원이나 든다. 2016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30.7%나 된다.

기후변화를 염려해 전기차를 선택하려던 소비자도 멈칫하게 한다. 원자력을 줄이고 정부 방침대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면 탄소 배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최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유명 환경보호론자와 과학자 27명이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 달라는 서한을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격변기의 정책은 더 정교해야 한다. 싼 가격에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한국이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중요한 힘이기도 하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가진 한국에 수출 경쟁력은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된다. 안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작용이 없도록 타이밍을 현명하게 살펴야 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