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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 City]LP… 중고 카메라… 그곳엔 ‘오래된 미래’가 있다

입력 | 2017-07-10 03:00:00

<9> 영화 ‘옥자’ 속 회현지하상가




슈퍼 돼지 옥자가 글로벌 기업 미란도 직원 등에게 쫓기다 서울 중구 회현지하상가에서 쓰러지자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옥자를 지키기 위해 나선 영화 ‘옥자’의 한 장면(위 사진). 7일 회현지하상가를 지나는 시민들. 유튜브 캡처·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시원한 개울가에 벌러덩 드러누워 낮잠을 잔다.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신선한 과일과 오염되지 않은 물고기를 먹는다. 사육장 따위는 없다. 숲 전체가 제집인 것처럼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누빈다. 키 2m, 길이 4m, 슈퍼돼지 ‘옥자’의 강원도 라이프다.

이런 평온한 삶에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끼어들면서 옥자는 정반대 환경에 노출된다. 미란도 직원들에게 쫓기다 도망쳐 들어간 서울 중구 충무로1가 회현지하상가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옥자를 잡아 미국 뉴욕으로 데려가려는 미란도 직원들과 동물보호단체 ALF(Animal Liberation Freedom), 경찰 그리고 이들에게서 달아나려는 옥자가 뒤엉키면서 다양한 점포가 빽빽하게 들어찬 회현지하상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가 가면 제일 이상할 장소가 어디일까 고민하다 1년 내내 하늘을 볼 수 없는 지하상가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회현지하상가라 불리는 이곳의 정식 이름은 ‘회현지하쇼핑센터’다.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과 한국은행 사이에 있는 지하상가다. 1970년대 후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레코드를 파는 가게들이 모이면서 이곳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근처에 자리 잡은 우체국과 한국은행의 영향으로 기념주화나 우표를 사고파는 점포들이 생겨났다. 여기에 중고 오디오와 카메라, 빈티지 가구를 파는 점포들이 더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온라인으로 바뀌었지만 회현지하상가는 여전히 LP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장 대표적인 LP 가게 중 하나가 리빙사다. 1966년 명동골목에 문을 열었다 1989년 회현지하상가로 옮겼다. 보유하고 있는 LP 수가 15만 장 이상으로 다양해 대구, 부산뿐 아니라 싱가포르와 홍콩 등지에서 오는 고객도 많다. 이현석 리빙사 사장은 “사실상 1994년이 LP 마지막 세대인데 요즘이 그때보다 판매량이 더 많다”고 말했다. LP 특유의 감성을 좋아하는 젊은 손님들 덕분이라고 했다.

너바나 LP를 만지작거리던 손님 유현서 씨(20)는 “LP의 소리는 전자기기를 통해 듣는 것과 다르다”며 미소 지었다. 10년 넘게 단골인 서기열 씨(63)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집해 현재 4000장 넘는 LP를 갖고 있다. 그는 “일회성이 아닌 한 음악을 오래 갖고 듣는 매력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대기업이 LP 매장을 열면서 이곳에 다시 위기감이 닥쳤다. 다행히 양측이 타협점을 찾으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이곳에는 LP를 취급하는 음반가게 외에도 개화기 이후의 역사자료를 파는 곳, 오래된 카메라나 시계를 고쳐주는 곳 등 ‘오래된 것’의 가치를 지켜가는 가게가 많다. 한 카메라 수리점 사장은 “대를 물려받은 이 공간을 나의 아들, 손자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며 “새것만 좋은 것이 아니니 젊은 세대들도 이곳을 많이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손성원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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