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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주성원]영구결번

입력 | 2017-07-10 03:00:00


메이저리그 첫 영구결번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1920, 30년대 베이브 루스와 함께 뉴욕 양키스의 ‘살인 타선’을 이끈 강타자 루 게릭이 주인공이다. 게릭은 14년 동안 2130경기에 연속 출장해 ‘철마’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체력과 의지도 강했다. 그런 그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갑자기 은퇴해 팬들을 울렸다. 1939년 은퇴식에서 양키스는 그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게릭은 2년 뒤 사망했다. 이후로 이 병은 흔히 ‘루게릭병’으로 불린다.

▷첫 영구결번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한국 프로야구에도 있다. KBO리그 첫 영구결번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포수였던 고 김영신의 54번이다. 국가대표 출신 유망주였던 김영신은 1985년 OB에 입단했지만 끝내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원년 우승팀 OB에는 당시 김경문, 조범현 같은 명포수가 즐비했다. 그는 입단 이듬해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사라는 추측과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함께 나왔다. OB 구단은 애도의 뜻으로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영구결번은 재키 로빈슨의 42번이다.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데뷔해 그라운드 안팎의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10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야구를 ‘백인의 스포츠’에서 ‘미국의 스포츠’로 만든 그의 업적을 기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97년 42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아직까진 유일한 전 구단 영구결번이다. 로빈슨이 첫 경기를 치른 4월 15일이면,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가 평소에는 착용이 금지된 42번을 달고 그를 추모한다.

▷LG 트윈스가 9일 은퇴한 ‘적토마’ 이병규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BO리그 영구결번 선수 13명 가운데 김영신을 제외하고 우승 경력이 없는 선수는 이병규가 유일하다. 팀 전력은 약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는 의미다. LG에서 적토마처럼 홀로 고군분투한 그가 이번 영구결번의 영예로 ‘무관’의 아쉬움을 달래기 바란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