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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의 뉴스룸]정규직화, 그 후 5년

입력 | 2017-07-11 03:00:00


노지현 사회부 기자

공교로운 일일지 모르지만 대선 일주일쯤 전인 5월 초 각종 여론조사가 문재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낼 무렵 주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서울시를 찾았다. 당시 문 후보 노동 및 일자리 공약의 핵심이 서울시 관련 정책과 겹치는 만큼 미리 내용과 자료를 검토해 보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돌았다. 중앙부처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배우러’ 오는 일은 아주 드물다.

문재인 후보가 결국 당선됐다. 당시 공약으로 내세운 공공일자리 부문 늘리기도 현실화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6일 코레일, 한국마사회를 비롯한 33개 공공기관 간부를 소집해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공공기관의 역할’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는 앞으로 공공기관이 자체 비정규직을 얼마나 정규직화해 나가는지 점검할 것이다.

현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인 서울시는 2012년 3월 ‘서울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서울시 본청과 사업소, 투자·출연기관 소속 비정규직 8000여 명에 대한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또 서울교통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등 투자·출연기관 11곳의 무기 계약직 2435명을 전원 정규직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 5년 동안 약 1만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이다.

2006년 이른바 비정규직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로 비정규직 문제는 10년 넘게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따라서 서울시의 ‘5년의 실험’은 정책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외주업체가 중간에서 수수료로 받던 돈을 근로자가 일부 갖고 가게 됐다. 서울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주업체에 일을 넘겼을 때의 중개 비용이 근로자에게 나눠지면서 서울시가 부담한 추가 예산은 없었다. 또 비정규직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돼 임금이 평균적으로 올랐다. 신분에 불안을 느끼던 근로자가 좀 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은 과거보다는 처우가 좋아졌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정규직 직원과의 임금 및 인사에서 차이를 느낄 때 더욱 그렇다고 한다. 특히 정규직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불만의 강도가 더 큰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中)규직’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우와 보상을 다 동등하게 해주기도 어렵다. 지방고시를 치고 들어온 정규직 공무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아서다. 이들에게선 ‘직렬이 같더라도 들어온 방식이 다른데 무분별한 정규직화는 역차별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자원은 한정돼 있다 보니 결국 자기 몫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기존 ‘내부자들’을 어떻게 달래느냐가 문제인 셈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기간제 교사나 학교급식 노동자 같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해 앞장서는 데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매년 정규직 전환을 해도 비정규직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도 고민이다. 업무를 외주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쟤는 왜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고 나는 해주지 않느냐’는 불만은 항상 나올 수밖에 없다.

“직군과 업무 내용에 맞춰 정규직화를 해야 한다.” “정규직화는 시작일 뿐 조직 통합 후 임금과 인사 제도 개편까지 헤쳐 나가야 할 길이 험하다.” 5년 먼저 ‘비정상의 정상화’를 경험해 본 서울시 공무원들의 조심스러운 제언이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