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고 있지도, 사용하지도 않겠다”며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다. 당시 점증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으려는 간절한 바람이었지만 떡 줄 상대의 의도는 간과한 채 김칫국을 마신 ‘짝사랑 선언’이었다. 이 ‘짝사랑 선언’으로 우리는 핵 재처리를 포함한 핵의 평화적 이용까지 제한받게 되어 결국 핵주권 포기에 이르게 되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성공단계에 이르게 되어,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의 위협으로 등장했다.
또 우리는 북한과의 좋은 협상카드를 아무 조건 없이 그들에게 바쳤다.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이뤄진 ‘대북 심리전 중단’ 합의다. 우리의 대북 심리전은 북한의 체제 생존을 위협할 만큼 공세적이고 주도적으로 전개되었다. 급해진 북한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6·15 남북공동선언에 상호 비방 중지를 명문화하고, 이를 실천한다는 명목 아래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의 모든 대북 심리전 중단을 요구했다. 우리 군은 처음엔 이에 응하지 않았으나 청와대의 지시로 결국 협상문에 서명했다.
광복 이후 남북한은 수많은 협상과 교류, 선언 등을 해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얻은 교훈은 너무 순진하게 접근했다거나, 먼저 카드를 보여주고 저자세로 협상을 구걸했다는 자괴감뿐이었다.
이윤규 합참대 명예교수·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