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화 데이비스-KIA 버나디나(오른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한화 이글스
때론 작은 세리머니 하나가 커다란 응집력과 일체감을 빚어낸다. KIA 외국인투수 로저 버나디나의 ‘헬멧잡기 세리머니’가 그렇다. 요즘 흔히 말하는 ‘히트다 히트’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전에서 6회 시즌 15호 솔로홈런을 때려냈다. 그는 이날도 어김없이 오른손을 헬멧에 얹은 채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리고 덕아웃에 들어오자 KIA 김기태 감독과 조계현 수석코치가 같이 오른손을 머리에 얹어 헬멧을 누르는 듯한 동작의 세리머니로 환영했고, 덕아웃에 줄지어 선 동료들도 오른손을 머리에 손을 올리며 똑같은 세리머리를 했다. 이들뿐만 아니었다. 관중석의 팬들도 같은 세리머니를 펼치며 즐거워했다.
버나디나는 올 초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 팀에 합류해 머리에 맞는 헬멧을 지급받았지만, 머리를 짧게 자르면서 헬멧이 헐거워졌다. 그때부터 오른손으로 헬멧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헬멧이 벗겨질까봐 잡았는데 이젠 이것이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돼 버렸다. 구단에서 헬멧을 바꿔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버나디나가 “괜찮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시즌 초반 퇴출을 걱정할 정도로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렸지만, 5월 중순 이후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됐다. 10일까지 7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21(318타수 102안타)의 고타율뿐만 아니라 15홈런과 19도루를 기록하면서 20홈런-20도루 클럽도 눈앞에 두고 있다.
버나디나는 외모와 몸매, 호타준족의 플레이 스타일이 과거 한화에서 7시즌 동안 맹활약한 제이 데이비스를 연상시킨다. 데이비스는 1999년 타율 0.328에 외국인 최초 30(30홈런)-30(35도루) 클럽을 개설했다. 이듬해인 2000년엔 타율 0.334에 22홈런-21도루로 2년 연속 20-20을 달성했다.
데이비스 역시 독특한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김인식 감독 시절 데이비스의 거수경례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다가 3루 코치에게 1차로 거수경례를 한 뒤 덕아웃 앞에서 2차로 덕아웃의 김 감독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한화 팬들은 데이비스의 홈런이 나오면 거수경례를 기다렸고, 그 세리머니가 끝나면 한바탕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다.
데이비스의 거수경례와 버나디나의 헬멧잡기. 그들의 개성 넘치는 세리머니가 선수단과 팬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야구장을 거대한 용광로로 변모시키고 있다.
광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