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 사회부 기자
누넌이 장관에 취임한 뒤 청사에 처음 들어섰을 때 “재무부 쓰레기통을 옮길 때도 ‘트로이카’(IMF, ECB, EU)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모든 상황이 나빴다. 운신의 폭은 좁았다. 그는 일자리 정책 같은 단기 성과보다는 근본적 해결책인 예산 삭감에 집중했다. 당시 아일랜드 정부는 과도한 채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 지출은 줄었고 국민 세금은 올랐다. 부실 금융기관에도 손을 댔다.
그렇다고 경제성장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큰 틀에서 판단하며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과학 등 미래 산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세수가 부족했지만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12.5%)으로 유지했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에어비앤비 등 다국적 기업이 더블린에 사무실을 내기 시작했다. 건전하게 성장하려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으로 도왔다.
아일랜드는 2000년대 중반까지 ‘켈틱 타이거’라고 불리며 경제성장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부동산과 금융의 거품이 꺼지고, 과다한 공공지출 등이 드러나면서 허약한 경제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누넌은 기본에 충실했다. 표심을 겨냥한 정책보다는 인기가 없는 예산 삭감에 충실했다.
아일랜드는 브렉시트라는 도전을 앞에 두고 있다. 최대 수출국인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힘들어지면 아일랜드 경제도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 떨어지면 아일랜드의 GDP도 0.3% 줄어든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 제조업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위기는 항상 닥친다.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자리를 생각하지 않고 물러난 누넌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이유종 사회부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