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거둔 나라는 어디일까요?
정답은 미국입니다. 1930년 오늘(13일) 미국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에서 벨기에를 3-0으로 물리쳤습니다. 당시 월드컵에는 개막전 개념이 없어 이 경기와 같은 시각 프랑스-멕시코 경기도 열렸습니다. 이 경기에서는 프랑스가 4-1 승리를 거뒀습니다.
미국과 벨기에가 맞붙은 역사상 첫 번째 월드컵 경기.
리메 회장과 월드컵 초대 우승 트로피 ‘쥘 리메 컵’.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트로피를 영구 보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이 트로피는 1983년 도난 당했고 범인 일당은 이 트로피를 녹여 금괴로 팔아버렸습니다.
제1회 FIFA 월드컵 포스터.
지역 예선도 없어서 참가 신청만 하면 대회에 나설 수 있었는데도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를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같은 축구 강국이 모두 끝내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대신 프랑스와 루마니아, 벨기에, 옛 유고슬라비아 등 4개국이 참가하면서 첫 번째 대회는 ‘아메리카컵’이 아니라 ‘월드컵’으로서 구색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당대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우루과이 대표팀 선수단.
이 대회에는 지역 예선뿐만 아니라 없는 게 참 많았습니다. 심판이 부족해 각국 감독이 돌아가며 다른 나라 경기 때 선심을 맡았습니다. 울리세스 사우체도 볼리비아 대표팀 감독(1896~1963)은 아르헨티나-멕시코 경기 때 주심을 보기도 했습니다. 사우체도 감독은 이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3개 불었습니다. 보통은 3경기에 한 번만 불어도 페널티킥 선언이 많은 심판으로 손꼽힙니다.
앞 가슴에 ‘우루과이 만세(Viva, Uguruay)’라고 쓴 유니폼을 입고 기념 촬영 중인 볼리비아 대표팀.
볼리비아 선수들은 실제로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월드컵에서 국가간 경쟁의식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이 대회 준우승팀 아르헨티나에는 주장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마누엘 페레이라(1905~1983)가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장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페레이라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시험을 봐야 한다며 대회 도중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게 아르헨티나에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페레이라를 대신해 출전한 기예르모 스타빌레(1905~1966·사진)가 8골을 넣으면서 월드컵 초대 득점왕에 올랐거든요.
스타빌레.
첫 번째 월드컵에는 공인구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서로 자기 나라 공을 쓰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바빴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맞붙은 결승전 때는 결국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만든 공,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에서 만든 공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 공을 쓴 전반에 1-2로 밀렸지만 자기네 공을 쓴 후반전에 3골을 넣으면서 결국 4-2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바라요.
한국이 월드컵에 첫 출전한 건 이로부터 24년이 지난 1954년 스위스 대회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헝가리에 0-9로 패했습니다. 그러자 일부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는 축구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월드컵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에 대해 리메 회장은 “지금은 한국이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뒤에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런 주장 자체가 월드컵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축했습니다. 그 예상대로 한국은 이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가 됐고, 월드컵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 이어 두 번째로 TV 중계권료가 비싼 스포츠 이벤트가 됐습니다.
1930년 전 오늘 첫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월드컵이 이렇게 대단한 대회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