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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무산 16시간 만에 재소집… 30분 토론뒤 12대1 결론

입력 | 2017-07-15 03:00:00

‘007작전’ 같았던 한수원 이사회





울산 울주군 소재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14일 오전 9시 20분경 전격적으로 열렸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13일 경북 경주시 본사에서 예정됐던 이사회가 무산된 직후인 이날 오후 6시경 14일 이사회 개최를 결정했다. 하지만 상임(사내)이사와 소수 실무진만 이 사실을 공유했고 비상임이사들조차도 한수원 측의 뒤늦은 통보를 받고 알았을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다. ‘007작전’ ‘도둑 이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습적으로 결정돼 향후 공론화 과정에서 되레 더 큰 갈등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일부 비상임이사엔 3시간 전 통보

한수원 비상임이사들은 13일 경주 한수원 본사 진입이 좌절돼 이사회가 무산되자 발길을 돌렸다. 한수원으로부터 “경주 인근을 벗어나지 말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일단 경주 인근에 머물렀다. 이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숙소는 각자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임이사들이 14일 이사회 소집 통보를 받은 시간은 제각각이었다. 13일 오후에 통보를 받은 이사도 있지만 일부는 14일 오전 6시경 한수원으로부터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보문단지 스위트호텔로 오전 9시까지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비상임이사들은 한수원이 제공한 차량으로 호텔에 도착했다. 지하 2층 스위트포럼A실에 이사 13인이 집결하자 상임이사들은 이사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일부 비상임이사는 반발했다. “급하게 열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수원 측은 ‘이사 전원이 동의하면 별도 절차 없이 회의 개최가 가능하다’는 상법 390조 4항을 들어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설득했다. 20분 가까이 이사회 개최가 합의되지 않아 무산 가능성이 커졌다. 그 시간, 한수원 노조는 이사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움직였다. 다급해진 한수원 측은 이날이 아니면 앞으로 이사회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며 읍소 작전을 펼쳤다. 결국 비상임이사들이 찬성하며 이사회가 진행됐다.

○ 정부 요청받아 3개월 일시 중단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토론이 끝난 직후 거수투표가 진행됐다. 12명의 이사가 찬성에 손을 들었다.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만 “반대한다”며 손을 들지 않았다. 회의장은 조용했고 결정은 일사불란했다.

이사회는 30분 만인 오전 9시 50분 끝났다. 노조원 20여 명이 도착했지만 일시중단 안건이 가결된 직후였다. 회의장에는 20여 명이 앉았던 의자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테이블에는 과일주스, 커피가 반 정도 담긴 컵들이 남아 있었다. 한수원 노조 측은 “땅속(지하 회의실)에서 도둑 이사회를 열었다”며 허탈해했다.

이사들은 △공론화위원회 발족 시점부터 3개월 공사 중단 △일시중단 비용 1000억 원 지출 △공사 재개를 대비한 인력 수준 유지 방안에 찬성했다. 한수원은 이번 결정이 신고리 5, 6호기 영구 정지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문건으로 작성해 이사회 전원의 동의를 받았다. 이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무회의를 거쳐 통보한 내용을 공기업이 거부하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한수원은 신고리 5, 6호기 공사 일시중단으로 현장 기자재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등의 피해액만 약 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각 업체에 3개월간의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해 제출하라고 했다. 인력 유지 등에 드는 인건비 120억 원도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공사 재개에 대비해 인력, 장비를 가능한 한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업체들이 낸 피해액을 검토한 뒤 협의를 통해 보상 규모를 결정해나갈 방침이다. 피해 보상에 드는 비용은 한수원 예비비로 충당한다. 한수원은 공론화위 활동이 시작되는 대로 협력사에 공사 일시중단 요청 공문을 보낼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이르면 다음 주 공론화위 구성을 완료할 방침이다. 공론화위는 3개월 동안 전문가 토론, 자료집 제작 등을 추진하고 이후 시민배심원단이 공사 중단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건혁 gun@donga.com·박희창 / 경주=정재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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