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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 ‘일자리 대통령’은 틀렸다

입력 | 2017-07-16 22:00:00

전체 일자리 중 공공부문 7.6%…
OECD 평균보다 적다지만 선진국은 공공부문 감축 개혁中
소득상위 10% 차지한 그들이 한국사회 불평등 주범이다
대통령부터 공무원임금 삭감해 일자리 창출·사회통합 하시라




김순덕 논설주간

한 공시족(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카페에 들렀다 혈압이 오르는 경험을 했다. 40대 초반이라는 고양시 8급 공무원이 “야근하다 잠 와서 30분 동안 모든 질문 답함”이라며 ‘자유수다’를 시작한 것이 평일인 13일 오후 8시 36분. 야근이 많은가, 동사무소와 시청 중 어디가 더 편한가…주로 이런 질문에 야근 안 많고 요새 눈치 안 보는 분위기다, 사기업 경험이 있어 둘 다(동사무소와 시청) 편했다… 한가한 문답끝에 공무원이 퇴장한 시각이 오후 10시 56분이었다.

그가 친절하게 알려준 9급 공무원 야근비가 시간당 8000원이다. 소상공인들이 경악을 하는 최저임금 시급 7530원보다 많다. 오후 9시도 안 돼 졸린다며 인터넷 수다나 떨다 내가 낸 피 같은 세금으로 야근수당 챙기는 공무원도 있는데, 새 정부는 1만2000명이나 더 뽑겠다며 시험 치는 비용만 80억 원을 추경에 포함시켰다.

우리 집도 청년 백수가 있어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우선 정책에 쌍수 들어 환영하는 바다. 그러나 ‘혈세로 공공 일자리 81만 개’는 당장의 역효과뿐 아니라 나라와 후손에 두고두고 부담을 안긴다는 점에서 나는 반대다.


우선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공공 부문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3%에 비해 우리는 7.6%밖에 안 된다”며 OECD 평균의 반으로만 높여도 일자리 81만 개가 나온다고 공약 1호를 설명했다. 그러나 13일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7’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 일자리 비중은 7.6% 그대로지만 OECD 평균은 18.1%(2015년 기준)로 줄었다. 대선 캠프가 ‘한눈에 보는 정부 2015’를 놓고 공약을 짰다는데 2년간 다른 나라들은 공공 개혁에 박차를 가했던 거다.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일본의 공공 일자리 비중이 6%이고 독일도 10.6%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고도 정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일본 36%, 독일 55%로 우리의 24%보다 높다(OECD 평균 42%). OECD 평균과 정확히 일치하는 18%의 공공 일자리를 완비한 그리스의 서비스 만족도가 13%에 불과하다는 건 공공 일자리 확대와 정부 능력은 별개임을 입증한다.

공공 부문 확대가 민간 고용의 마중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공공 부문에 성과주의와 직무 기반 노동구조가 갖춰지지 않을 경우 민간 일자리를 잡아먹을 뿐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공공 일자리 1개 생길 때 민간 일자리 1.5개가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당장 웬만한 기업에서 간신히 마음잡고 일하던 청년들이 노량진 공시학원과 신림동 공시촌으로 진격하고 있다. 그리스와 멕시코 등 6개국만 빼고 OECD 회원국마다 성과연동급제를 활용 중인데 이 정부는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불평등과 양극화 등 국가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월 416만 원)가 전체 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런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대기업에 있다고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썼다.

이른바 진보 학자들이 공(公)귀족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는 건 비겁하다고 본다. 공공노조가 속한 민노총 조합원의 2016년 월평균 임금총액이 420만 원, 올해 공무원 기준소득월액 평균은 무려 510만 원이다. 혈세로 봉급 받는 이들 상위 10%의 금밥통 세력이 성과 걱정, 해고 걱정 없이 봉건적 특권을 누리겠다는 대(對)국민 갑질이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인 것이다.

일자리 격차를 줄이겠다고? 대통령부터 공무원 임금 자진 삭감하시라. 2017년 공무원 인건비 33조4000억 원에서 20%만 삭감해도 6조6800억 원이 생긴다. 이번 추경의 절반 규모니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지원은 너끈할 터다. 차제에 1400조 원 국가 부채의 주범인 공무원연금도 국민연금과 통합·개혁하면 사회 통합은 물론 공시족 쏠림 현상도 차차 잦아들 게 틀림없다.

문제는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 빼고는 대선 공약을 신성불가침처럼 아는 문 대통령이 공약 1호를 바꿀 수 있느냐다. 규제프리존 같은 규제 개혁으로 바꾸면 세금 안 들이고도 민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지만 신의 직장에서 노니는 브라만(사제계급)에게는 규제가 성배(聖杯)다. 종교 같은 이념 때문에 성배는 못 건드리고, 민노총 한국노총의 크샤트리아(무사계급)는 ‘대선 빚’ 무서워 못 건드린다면 문 대통령은 나머지 국민을 수드라(피정복민)로 만든 한국판 카스트제 대통령으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