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경제부 차장
그는 한국엔 ‘막말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1월 20일 취임사를 읽어 보면 어디에도 ‘막말’은 없다. 미국민을 위한 대통령, 특히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뿐이다.
“그동안 소수 기득권세력의 승리는 국민 여러분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국민이 다시 이 나라의 통치자 자리를 차지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잊혀졌던 사람들(The forgotten men and women)이 더 이상 잊혀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미국)는 외국의 산업을 풍요롭게 하는 대신 미국의 산업을 희생시켰습니다. 앞으로 모든 무역과 세금, 이민정책, 외교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미국인 노동자와 미국인 가정의 이익을 위해 이뤄질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 상황은 다르고,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유와 취임 이후 분위기도 같지 않다. 그러나 두 대통령의 취임사 기조는 유사한 측면이 적지 않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민생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나쁜 거래’를 1차 공략 대상으로 삼은 반면, 문 대통령은 서민에게 부담 주는 ‘나쁜 가격’에 주목하는 인상이다. 이동통신요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사실상 민간 사업자의 요금까지 결정하는 ‘보편 요금제’가 추진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과다한 대입 전형료를 올해부터 바로잡으면 좋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FTA 개정’ 공세에 대해 반복적으로 하는 대응도 “한미 FTA의 명과 암, 효과와 부작용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분석하고 따져 보자”는 것이다. FTA든 민생 요금이든 정말 나쁜지, 나쁘다면 왜 그런지, 좋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차례로 그리고 차분히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