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4일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검토’ 메모 등을 전격 공개했다. 모두 300여 건의 자료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고 사본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넘겼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3일 민정비서관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한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삼성 관련 메모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견 이 메모는 박 전 대통령이 민정수석실을 통해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 중요한 물적 증거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형사재판의 증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메모는 결함이 많다. 메모를 누가 작성했는지, 어떤 경위로 작성했는지 알기 어렵다. 청와대 발표대로 민정수석실 내 누군가가 작성한 것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적은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작성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작성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면 실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가 됐는지, 보고가 됐다 하더라도 그대로 실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인지도 알 도리가 없다. 법조계에서는 이 메모는 그 자체로는 증거능력도 증명력도 없다는 견해가 다수다.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영장전담판사는 극심한 인격모독적인 신상털기와 비난에 시달렸다. 이 부회장 뇌물죄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받게 될 압력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재판부는 여론재판이라는 오명(汚名)을 듣지 않도록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도 국정의 최고기관답게 재판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론전을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