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구연 ‘전기수’
단원 김홍도의 ‘담배썰기’. 그림 속 왼쪽 아래 부채를 든 채 책을 읽는 남자가 전기수인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8세기 조선은 소설에 빠졌다. 궁궐에서 촌구석까지 소설을 즐기지 않는 곳이 없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법이다. 당시 서울 도성 안에 15곳에 이르는 세책점(貰冊店·책 대여점)이 성업했다. 세책점은 장편소설을 여러 권으로 나눠 손님이 연거푸 빌리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뒷이야기가 궁금한 나머지 빚을 내 세책점을 들락거리기에 이르렀다. 실학자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에서 “소설을 돈 주고 빌려보는데 깊이 빠져 집안이 기운 자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책점은 글을 알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이용했다. 일반 백성이 들락거리기는 쉽지 않았다. 책값도 비쌌고 문맹자도 많았던 탓이다. 이에 따라 소설책 읽어주는 일로 생업을 삼는 ‘전기수(傳奇수)’가 생겨났다.
전기수는 저잣거리에 좌판을 깔거나 담뱃가게 한쪽에서 목청 좋게 소설책을 낭독했다. 전기수가 소설책을 펼치면 누구나 원하는 시간만큼 들었다. 표를 받는 것도 아니고 지정 좌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멀찍이서 듣고 떠나도 그만이었다.
공짜면 양잿물도 큰 잔으로 먹는다고 했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서 전기수는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19세기 중반까지 살았던 시인 조수삼은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전기수가 돈 버는 방법을 적었다. 전기수는 요전법(邀錢法·돈 얻는 법)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핵심은 침묵에 있었다. 심청과 심 봉사가 만날 때, 이몽룡이 춘향의 옷고름을 풀 때, 다음이 몹시 궁금한 대목에서 전기수는 침묵했다. 청중은 다음 장면이 알고 싶어 앞다투어 돈을 던졌다. 전기수는 돈이 웬만큼 쌓였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목청을 돋우었다.
일정한 금액을 받으며 부유층을 상대했던 전기수도 있다. 고전소설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속 전기수 김호주는 부유한 집안에 드나들며 낭독했다. 맛깔난 낭독 솜씨 덕에 집을 살 만한 돈을 벌었다.
소설책 한 권은 전기수를 통해 열 사람, 백 사람의 귀로 들어갔다. 조선의 저잣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은 남녀노소 전기수의 목소리에 즐거워했고 때로 분노했다. 전기수는 예능인이자 지식의 전달자였고, 공론장의 구심점이었다.
홍현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