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소설가 김동인과 김환은 도쿄에서 미술학교를 다녔다. 김환의 ‘신비의 막’(1919년)에서 주인공 세민이 말한다. “아부지! 미술이란 그런 것이 아니야요! 미술은 우리 사람에게 밀접관계가 있는 것이올시다. 그 종류는 조각, 세공, 건축, 그림 기타 여러 가지올시다.” 미술가를 낮춰 보던 시대의 간절한 외침이다. 김동인과 김환은 문예지 ‘창조’의 창간 동인이었으며 화가 김관호와 김찬영도 이 잡지에 참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여성의 근대적 자아 정체성을 그린 ‘경희’(1918년)를 비롯한 단편 소설들을 발표했다. 소설 속 경희가 말한다. “지금은 계집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이상에는 못할 것이 없다고 해요. 사내와 같이 돈도 벌 수 있고, 사내와 같이 벼슬도 할 수 있어요. 사내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세상이에요.”
서양에서도 문필과 화필을 모두 잡는 작가가 드물지 않았다.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미술에서나 시에서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동물소설로 유명한 어니스트 시턴도 소설가이자 화가였다. 수채화 3000여 점을 남긴 헤르만 헤세에게 그림 그리기는 ‘견디기 힘든 어려운 지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생텍쥐페리는 유명한 ‘어린 왕자’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언어와 이미지는 성격이 매우 다른 매체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문예론이 발달하였다. 시와 글씨와 그림에 두루 뛰어난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을 문예의 이상으로 여겼다. 그림을 읽는다는 독화(讀畵)와 책을 본다는 간서(看書)라는 표현이 예로부터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