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로서 한국프로야구에 큰 족적을 남긴 스승과 제자가 바쁜 일정을 쪼개 모처럼 함께 했다. 조범현(왼쪽) 스포츠동아 해설위원과 박경완 SK 코치가 인터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4개월 만에 다시 만난 스승과 제자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풀어나갔다. 스승은 살이 부쩍 빠진 제자를 걱정했고, 제자는 살집이 조금 붙은 스승을 보며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올해로 25년째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조범현(57) 전 kt 감독과 그의 애제자 박경완(45) SK 배터리코치 얘기다.
1993년 10월, 쌍방울에서 배터리코치와 포수로서 이룬 첫 만남은 둘의 인생을 바꿔놓는 시발점이 됐다. 그해 은퇴 직후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던 조 전 감독은 21살의 신예를 대형포수로 길러내면서 훗날 코치와 감독으로 걷게 될 탄탄대로를 열어젖혔고, 연습생(현재의 육성선수) 신분으로 프로 무대를 밟았던 무명선수 박경완은 스승의 가르침 아래 KBO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안방마님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24년이 흘렀다. 올 시즌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으로서 <조범현의 야구學>을 연재해온 조 전 감독과 박 코치는 올스타전 브레이크 사이 짧은 휴식을 이용해 16일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둘은 20여 년 전 추억으로 화기애애하게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포수 ‘대가(大家)’답게 금세 심도 있는 얘기로 빠져들곤 했다. 풍성한 대화가 끝나고 나니 인터뷰는 어느새 2시간을 훌쩍 넘어있었다.
조범현 스포츠동아 해설위원-박경완 SK 코치(오른쪽).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말수 적던 스승과 오토바이 타던 제자의 첫 만남
조범현(이하 조) :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3월 시범경기였습니다. 인천 경기 관전을 위해 현장을 찾은 뒤 이번이 처음이네요. 요샌 박 코치가 바쁘다고 연락도 잘 안 하네요.(웃음)”
박경완(이하 박) : “(손사래를 치며) 어휴 아닙니다. 그나저나 감독님께선 살이 조금 붙으셨네요. 보기 좋습니다.”
조 : “나는 그렇다 치고 너는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 병원 한 번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박 : “사실 제가 무릎과 아킬레스건 수술을 각각 2번, 3번 받은 뒤 갈수록 체중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15㎏를 감량하게 됐죠. 주위에서도 건강에 대한 걱정을 많이 듣는 요즘입니다.”
조 : “쌍방울이 홈으로 쓰던 전주구장에 처음으로 갔더니 한 선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쫄래쫄래’ 출근하는 겁니다.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으니 박경완이라고 하더군요. 첫 만남이었죠.”
박 : “오토바이는 제가 워낙 좋아하던 터라….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안 타본 오토바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당시 쌍방울에는 배터리코치라는 직책이 없었습니다. 현재 두산에 계시는 유지훤 코치님께서 수비 겸 배터리코치를 함께 맡으셨죠. 그런데 조 감독님께서 쌍방울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물론 기대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요.(웃음)”
-그라운드에서 느낀 서로의 첫 인상은 어땠습니까.
조 : “처음 경완이를 봤을 때는 포수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웃음)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죠. 그래서 기본기 체크부터 하기 위해서 캐치볼을 연신 시켰죠.”
조범현 스포츠동아 해설위원-박경완 SK 코치(왼쪽).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경완이 아버님께서 훈련을 보시고는 제게 오셔서…”
-말씀대로 KBO리그에 두고두고 회자된 ‘조범현식 지옥훈련’이 이어졌습니다.
박 : “그때만 생각하면 어휴…. 일단은 러닝 훈련이 악몽이었습니다. 제가 뜀박질에 약했는데 매일 같이 구장을 10바퀴씩 돌곤 했죠. 오히려 감독님께서 저보다 잘 뛰셨습니다. 헛구역질이 여기까지 올라온 뒤로는 블로킹 훈련에 들어갑니다. 공 250개가 들어가는 박스 3개를 다 받아낸 뒤에야 하루가 끝났습니다. 가끔은 4박스씩 받았으니 1000개 가까이 몸으로 막아낸 셈이죠. 제가 못하겠다고 드러누워 있어도 감독님께선 펑고를 치셨습니다.”
조 : “쌍방울 코치로 처음 부임했을 땐 저도 30대 혈기왕성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선수도 파김치가 될 때까지 흙바닥을 굴렀죠. 특히 블로킹 훈련은 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이를 위해선 많이 받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 훈련량이면 감독님이 미울 법도 했겠는데요?
조 : “어느 날부터는 경완이가 제 눈치를 슬쩍 보면서 피해 다니더라고요.(웃음) 아,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경완이 아버님께서 하루는 제게 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아들 녀석 훈련장면을 우연히 봤는데 그 길로 구단에 쫓아가서 항의할 뻔 했다고요. 이게 사람 잡는 일이지 어떻게 훈련이냐고 하셨지요.”
박 : “지금은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어휴, 죽어도 못 돌아가요.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 지금 선수들은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겁니다.”
SK 감독 시절 박경완을 지도하고 있는 조범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제자를 떠나보낸 뒤에야 감독님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함께 보낸 시간만큼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을 듯합니다.
조 : “경완이하면 기억나는 장면은 식사시간이에요. 얼마나 잘 먹던지 게임 전에 우동 3그릇, 김밥 6줄을 먹더라고요. 그래서 식사 중간에 음식을 뺏는 일도 많았습니다.”
박 : “또 하루는 대구 원정이었습니다. 4타수 4삼진을 당한 날과 도루 8개를 허용한 날로 기억합니다. 경기 끝나고 밥을 4그릇을 먹었는데 감독님께서 ‘너 지금 밥이 넘어가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조 : “내가 참다 참다 4그릇째 시키는 장면 보고 화가 치밀더라.(웃음)”
-그랬던 제자가 이제는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됐습니다.
박 : “코치가 되니까 ‘말’에 대한 조심성이 커지더라고요. 말 한마디에 따라서 선수의 자세가 바뀌기 때문이죠.”
조 : “그렇고 말고. 요새 선수들은 예민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말 한마디를 뱉더라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생각해야 돼요. 또한 모두에게 같은 훈련방법을 제시하기보다도 개개인 특성을 잘 파악해 그에 맞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박 : “코치를 해보니까 스승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겠더라고요. 2015년부터 김민식(현 KIA)이라는 포수와 동고동락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마스크를 쓴 친구라 처음엔 몸이 움직이지 않는 친구였는데 서로 피나는 노력 끝에 점차 모양이 나왔죠. 그런데 트레이드로 다른 팀에 간다고 하니 1998년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때 제가 현대로 트레이드 되면서 감독님께서 많이 허전해 하셨겠구나 하는….”
-스승으로서 박 코치에게, 제자로서 은사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듯한데요.
조 : “지금 코치 2년차라고 하니까 아마 이것저것 할일이 많을 테지요. 중요한 부분은 선수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인성적인 면도 마찬가지고요.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짚어줘야 합니다. 경완이는 누가 뭐래도 한국야구에서 포수로 한 획을 그은 선수 아닙니까. KBO리그는 물론 국제대회 성과도 훌륭했고요. 이런 친구들이 앞으로도 현장에 오래 남아서 제자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 “저야 뭐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감독님께서 하루빨리 현장으로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 : “왜, 나랑 머리싸움 해보게?”
박 : “제가 어떻게 감독님과 견주겠습니까?(웃음)”
조범현 스포츠동아 해설위원-박경완 SK 코치(오른쪽).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조범현
▲1960년 10월1일 생
▲대구초-대건중-충암고-인하대
▲우투우타
▲1982년 OB∼1991년 삼성∼1993년 쌍방울 코치∼2000년 삼성 코치∼2003년 SK 감독∼2007년 KIA 코치∼2007년 KIA 감독∼2013년 삼성 인스트럭터∼2014년 kt 감독
▲KS 우승 1회(2009년)
● 박경완
▲1972년 7월11일 생
▲전주중앙초∼전주동중∼전주고
▲우투우타
▲1991년 쌍방울∼1998년 현대∼2003년 SK∼2014년 SK 코치(현)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