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북측에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각각 이달 21일과 내달 1일 열자고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27 정전협정 체결 64주년을 맞아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추석 명절과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을 기해 이산가족 상봉과 성묘 방문을 하자고 제의한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다. 북한이 호응하면 2015년 말 남북 차관급 회담 이후 1년 7개월간 막혔던 당국 간 회담이 성사되는 것이지만 북한이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번 제의에 북한이 즉각 응하지 않는다 해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과거 군사회담에 대해선 적극적이었던 만큼 성사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은 베를린 구상에 대해 “잠꼬대 같은 궤변”이니, “철면피하고 누추하다”느니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문 대통령이) 선임자들과는 다른 입장이어서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 한마디에 매달리는 우리 정부의 자세가 안쓰럽기만 하지만, 남북 간 꽉 막힌 대결 국면이 대화로 전환하는 물꼬가 되고 향후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전환점으로 작용한다면 더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게 사실이다. 정부는 군사회담을 계기로 단절된 통신채널을 복구하고 군사적 긴장 조성 행위를 방지하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부터 요구하면서 다음 달 실시될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의 중단을 요구하는 선전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북한은 대북 방송 중단을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으로 내걸 수도 있다. 절실한 인도주의적 사안과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연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비핵화 진전이 없는 남북대화에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마냥 지켜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구애는 이번 제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북한의 거부에도 계속 매달리거나 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한의 시간 벌기나 이간 술책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 제재와 대화의 병행은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제시한 대북 원칙이자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