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지난번 이 칼럼을 통해 ‘서울대병원 죽어야 산다’라는 제목으로 서울대병원의 내부 이기주의를 지적했더니 한 노교수는 후배인 나에게 이렇게 호통쳤다. 물론 동문으로서, 또 개인의 얼굴을 보면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름값만 앞세워 온 서울대병원의 문제를 잘 지적했다’ ‘속이 후련하다’ 같은 내부 교수 응원과 독자 격려도 많았다.
그 후 3주가 지났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싶었는데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물이 있었다. 우선 이비인후과, 외과 등의 과 간 비협조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갑상선암센터가 두 곳이었던 문제는 협의를 통해 올해 안에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환자들은 더 이상 어느 갑상선암센터로 가야 할지 헷갈리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들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합의를 통해 바로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울대병원 시스템이 이렇게 유연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과거엔 각 과 사이의 알력으로 인해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날 칼럼 덕분에 남아 있던 문제까지 한 번에 정리된 듯하다”며 “또 학연과 지연을 따지던 세대가 정년퇴임 등으로 물러난 것이 큰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하여튼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이런 변화는 참 반가운 일이다.
기존의 틀을 깨고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의 생태문화를 ‘파괴의 문화’라고 한다. 서울대병원도 이번 기회에 더 파괴적인 변화로 나가야 한다.
서울대병원은 환자에게 불편한 시스템이 여전히 많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가장 대표적이다. 하루 외래 환자를 200∼300명이나 보는 교수도 있다. 환자와 눈을 마주칠 틈도 없다. 평소 의료진에 대한 불신 때문에 큰 병원을 찾아가 ‘최고 명의’에게 하소연을 하고 진단을 받아보려는 환자가 많지만 이들의 기대는 ‘3분 진료’에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서울대병원은 지하 1층에 2018년 12월 완공 계획으로 첨단외래센터를 짓고 있다. 병원 측은 그곳에 환자가 움직이는 ‘셀프서비스’가 아닌 의료진의 ‘풀서비스’ 개념의 완전히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환자가 뒷전에 밀려 있던 서울대병원에 새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사람이 움직이고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면 서울대병원은 진정한 최고의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