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한 뒤 첫 작업일인 17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 현장 주변에 10대의 타워크레인이 멈춰 서 있다. 울주=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평소 포클레인 50대가 들어가던 공사 현장에 1대만 들어갔어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는 이 중장비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는데….”
17일 오전 9시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 현장 입구에서 만난 포클레인 기사 황재철 씨(51)는 한숨을 내쉬었다. 중장비 주차장에는 포클레인 10대, 덤프트럭 22대, 이동식 크레인 5대 등 현장에 투입돼야 할 장비들이 기약 없이 세워져 있었다. 공사가 중단돼 중장비를 쓸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본보는 신고리 공사 일시 중단 후 언론 매체 중 처음으로 공사 현장 내부를 취재했다.
○ 출근은 했는데 할 일은 없는 현장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차분한 수준을 넘어 고요함마저 감돌았다. 공사장에 울려 퍼져야 할 철근 두드리는 소리, 10대의 대형 타워 크레인과 포클레인 등 중장비의 둔탁한 쇳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환경정리팀 작업반장을 맡고 있는 정삼채 씨는 “언제 무슨 일을 하라는 건지 오전까지 업무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 다들 우왕좌왕했다”고 말했다. 오후에야 배수로 정비 작업 및 건설 자재 정리 작업이 일부 시작됐다.
한수원은 이사회 결정에 따라 시공사에 건설 일시 중단을 위한 작업 계획과 인력 운영 세부계획을 2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신고리 5, 6호기 시공사인 삼성물산 컨소시엄 소속사(한화·두산·SK건설)와 협력업체 현장 소장들은 오전 내내 공사 일정을 재검토했다.
한수원 이사회는 일시 중단 기간에도 근로자 수를 최대한 유지하고, 현장 관리 작업은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인건비 등의 명목으로 1000억 원의 예비비도 배정했다.
하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한숨만 쉬고 있다. 공론화위원회 결과가 나오는 3개월 후 공사가 재개될지, 폐쇄될지 모르는 상황 자체가 미덥지 않다는 것이다. 덤프트럭 운전사 이철우 씨(53)는 “내일부터 신고리 현장에는 일감이 없을 것 같아 다른 건설현장을 미리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바닷바람에 철근 부식 빨라질 것’ 우려
한수원 이사회는 원자로건물 마지막 기초(3단) 부분 건설은 다음 달 말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원자로 안전과 품질 확보를 위해 철근 배근과 콘크리트 타설 등 마무리 작업이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정작 작업이 재개된 첫날 현장에서 이 작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원전의 상징인 둥근 원자로의 첫 기초가 될 동그라미 모양 철근 구조물 두 개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남지헌 한화건설 소장은 “공사가 중단되는 3개월은 결코 단기간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장기 중단에 해당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일단 시작된 공사가 멈추게 되면 3개월 동안 수많은 변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름철 장마, 무더위에 바닷가 인근이라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까지 감안하면 철근 부식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 원전 공사를 일시 중단한 사례가 없어 일시 중단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울주=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