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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딥포커스]비폭력 ‘정의 행진’ 이끈 터키의 간디

입력 | 2017-07-18 03:00:00

제1야당 대표 클르츠다로을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데타 저지 1주년을 맞아 7월 15일을 국경일인 ‘민주주의와 국가 통합의 날’로 선포했다. 쿠데타 1주년 기념집회의 주제 역시 ‘민주주의와 통합’이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기념연설은 서슬이 퍼렜다. 그는 “반역자들의 목을 치겠다”며 “의회에서 사형제 부활 법안이 통과되면 곧바로 재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통치가 가혹해질수록 더욱 주목받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 터키의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대표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가 그 주인공이다. 야당은 16일 오전 2시 30분, 1년 전 쿠데타 세력이 앙카라 의사당을 폭격한 시각에 의사당 앞에서 열린 대통령 참석 의회 행사를 보이콧했다.

이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터키는 당신 같은 겁쟁이(coward)가 아니다. 이 나라엔 심장이 있다”고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맹비난했다. 지난해 쿠데타 시도 당시 국민들이 거리를 행진했지만 클르츠다로을루는 공항으로 피신했던 사실을 비꼰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에르도안의 비난은 역설적으로 클르츠다로을루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준다. 앞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15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쿠데타 저지 1주년을 기념하는 기고문을 보내 에르도안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군부 쿠데타를 저지한 다음 날은 터키에서 새롭고 민주적인 시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터키 민주주의는 독재체제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클르츠다로을루는 국가비상사태에서 사법 정의와 의회 권한이 크게 줄었다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쿠데타를 근절하기 위한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1년 전 쿠데타의 배후와 그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쿠데타가 발생한 지난해 7월 15일 밤 일어난 일을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쿠데타 시도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정부에 의해 막혔다”며 “정보가 제한돼 쿠데타 배후 세력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현재 감옥에 있는 장군의 대부분이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AKP)에 의해 승진한 것을 고려해 집권 세력도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정치력은 최근 그가 이끌었던 ‘정의의 행진(March of Justice)’ 과정에서 크게 성장했다. 지난달 소속 정당의 에니스 베르베로을루 의원이 투옥돼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은 데 항의해 사법 정의를 촉구하기 위한 비폭력 도보 행진 시위였다. 그는 지난달 15일 수도 앙카라에서 시작해 이달 9일 베르베로을루 의원이 수감된 이스탄불 말테페에 도착하기까지 25일간 약 425km를 지지자들과 함께 걸었다.

그의 장정은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1930년 마하트마 간디의 ‘소금 행진’에 비유되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지의 행진’이라고 폄하했지만 행진의 마지막 날 집회에는 100만 명이 운집하는 등 분명한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정의의 행진을 완주한 날 “두려움의 장벽을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한 클르츠다로을루가 터키 쿠데타 1주년에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각을 세운 모양새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국가비상사태 해제를 생각할 이유가 없다”며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더 연장할 뜻을 시사했다. 터키 의회는 17일 연장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으며 이변이 없는 한 19일부터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