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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가 떴다] 이흥섭·이규섭 “늘 잘하는 동생이라…” “프로 때 안 만나 다행”

입력 | 2017-07-19 05:45:00

원주 동부 이흥섭 차장(왼쪽 사진)과 서울 삼성 이규섭 코치는 남자프로농구계에 잘 알려진 형제다. 소속팀이 달라 경기장에서는 인사만 나눌 정도로 서먹하게 지내지만 마음속으로는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다. 사진제공 | 점프볼·서울삼성썬더스농구단


■ 프로선수 출신 농구인 형제 이 흥 섭·이 규 섭

兄 원주 동부 이흥섭 차장

같은 고교 나와…동생 괴롭힐라 후배들 눈치
동생 스카우트 문제로 잠시 학교 떠나 있기도
프런트 변신…원정 온 동생도 제대로 못 봤죠

弟 서울 삼성 이규섭 코치

고교 때 한양대 연습경기…형과 제대로 붙어
프로 와선 동료들이 나한테 동부 소식 묻기도
괜한 오해 받으면 곤란…만나도 인사만 했죠


남자프로농구 원주 동부의 이흥섭(45) 차장과 서울 삼성 이규섭(40) 코치는 프로농구 역대 2호 형제선수 출신이다. 같은 시기에 유니폼을 입진 않았다. 이 코치가 프로에 입단한 직후 이 차장이 은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외모 뿐 아니라 이른바 ‘시크’한 성격은 닮았다. 평소 서로에 대해 물어보면 무신경하다고 느낄 정도로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이 차장은 “규섭이가 알아서 잘 하겠죠”라고 했고 이 코치는 “우리 형은 뭐 워낙 본인이 잘 하니까 제가 신경을 쓸 게 없어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하지만 한 자리에 모이니 조금은 달랐다. 각자의 팀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형제를 만나봤다.

이흥섭 원주 동부 차장(왼쪽)-이규섭 서울 삼성 코치.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 경기장에서만은 남보다 멀리하는 형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나기로 한 한 카페. 형 이 차장이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카페로 들어가지 않고 동생을 기다렸다. 동생의 차가 카페 앞으로 다가오자 주차할 자리를 찾아봤다. 주차공간이 협소해 제대로 차를 주차할 수 있게 옆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쏟아냈다. 이 코치의 차에 후방카메라, 주차 센서 등이 구비돼 있어 딱히 도움이 필요치 않았지만 제대로 주차하고 내릴 때까지 차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코치는 차에서 내리며 “형, 말 안 해줘도 다 보여서 괜찮아”라고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할 일을 마친 이 차장은 먼저 카페로 쑥 들어갔다. 음료를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뭘 이런 걸 시키느냐’, ‘다른 게 더 좋다’ 등 옥신각신한 끝에 음료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이 차장은 “가족 모임을 빼고, 이런데서 따로 만난 게 거의 2년은 넘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코치는 “코치가 되고 처음 원주를 갔을 때가 마지막인 것 같다. 그 때도 사실은 형이 나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다. 이상민 감독님 부임 이후 처음 간 원주 원정경기라서 동부 코칭스태프하고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 형이 동석했었다. 경기장에서 만나도 그냥 인사정도만 하고 얘기도 잘 안 하는 편”이라고 했다.

둘이 그렇게 지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 코치는 “내가 선수가 된 직후에 형이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프로에 가니 동료들이나 선배들이 ‘네 형 동부에 있는데 팀 분위기 어떤지 좀 물어봐’, ‘누구 다친 선수 없는지도 좀 알아보고’ 등 주문이 뒤따랐다. 그럴 때마다 이 코치는 ”나 형하고 전화도 잘 안 해. 그리고 그런 거 물어봐도 대답이나 하겠어”라고 넘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일이 잦아들었지만 이 코치는 “괜한 오해를 받으면 형도 곤란하고, 나도 좀 그럴 것 같아서 처음부터 아예 멀리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경기장에서는 만나도 서로 인사만 하게 된 것 같다”라고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흥섭 원주 동부 차장(왼쪽)-이규섭 서울 삼성 코치.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 형과 동생이 함께 시작한 농구와의 인연

둘은 어떻게 농구가 업이 됐는지 궁금했다.

이 차장은 “아버지가 워낙 운동을 좋아하셨다. 테니스를 즐기셨는데 휴일이면 새벽에 나가 해가 질 때 들어오실 정도로 운동에 열정을 보이셨다. 내가 중학교 때 키만 크고, 말랐었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을 하자고 하셔서 시작한 농구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때만해도 내가 농구선수라는 직업을 갖게 될지 진짜 몰랐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 코치는 “형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농구를 시작했는데 나도 같은 시기에 초등학교에서 농구를 하게 됐다. 형과는 좀 다른데 나는 농구를 하는게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 그 때부터 프로선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차장은 늦게 선수를 시작했지만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2m의 큰 신장 덕분에 센터를 맡았다. 한양대로 진학한 뒤로는 대학선발에 뽑힐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 코치는 고등학교에서 또래 가운데 가장 좋은 선수로 평가를 받았고,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둘에게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생의 스카우트 문제로 형이 약간은 피해를 보는 일도 있었다.(당시는 대학들이 뛰어난 고교선수들을 데려가기 위한 스카우트 전쟁이 엄청나게 심할 때였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스카우트 풍토였다.)

이 차장은 “워낙 오래된 일이고, 다 지나간 일이라 언급하는 게 좀 그런데 동생의 대학진학 때문에 내가 잠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사연은 이랬다. 이 코치를 놓고 여러 대학의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면서 이 차장이 속한 한양대의 스카우트가 꼬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차장은 잠시 학교를 떠나 집에 와 있어야 했다.

이 차장은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당시 나는 4학년이었는데 이미 프로팀으로 가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다. 규섭이 스카우트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때는 ‘아 이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팀 운동은 잠시 쉬었지만 수영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개인적으로 운동했다. 얼마 지나서 규섭이 스카우트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 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이 코치는 “형이 나 때문에 집에 와서 있었다는 걸 알았는데 그 때는 어려서 미안하고 그런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얘기를 듣고 보니 많이 미안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철이 없었다”고 말하며 형의 손을 잡았다.

선수 시절 이규섭. 사진제공|삼성 썬더스


● 몸은 멀지만 마음은 늘 가까이

이 차장과 이 코치는 고등학교 동문이다. 같은 고등학교 농구부를 나왔다. 나이 차이가 있어 같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형은 늘 동생을 신경써야 했다. 이 차장은 “내 후배들이 규섭이에게는 선배가 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후배들을 괴롭히면 그들이 규섭이 선배가 됐을 때 동생이 더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들은 조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이 코치는 “그래도 괴롭혔다”며 피식 웃었다.

이 코치는 “고등학교 때 한양대에 가서 연습경기를 하며 형하고 매치업이 돼 경기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감독님들이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기도 한데 그 때는 열심히 안 하면 엄청 혼나던 시기라 형을 상대로도 제대로 했다. 내가 프로에 진출해서 형과 길이 엇갈렸는데 같이 코트에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형은 프런트로 변신해 자신이 속한 팀 선수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동생이 뛰는 경기를 실제 경기장에서는 자주 못 봤다고 했다. 이 차장은 “프런트가 된 이후에 규섭이가 처음으로 원주를 방문해서 경기를 치른 적이 있었다. 내가 VIP 의전을 맡았는데 그날 눈이 엄청나게 왔다. VIP들이 경기장에 늦게 왔다. 동생 경기를 보고 싶었지만 내 역할이 있어 밖에서 계속 기다려야 했다. 결국 규섭이가 처음 원주로 와서 치른 경기를 제대로 못 봤다. 그 덕분에 내가 구단에서 인정받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차장은 “그 후로도 규섭이가 하는 경기를 따로 가서 본 적은 없다. 늘 TV로만 지켜봤다. 딱 한 번 우리 애들이 삼촌 경기를 보고 싶다고 해서 경기장에 간 게 전부다. 늘 잘하는 동생이라 굳이 내가 챙길 건 없었다”고 얘기했다. 이 코치는 “성격상 형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편인데 형은 등대 같은 존재다. 내가 늘 많이 의지한다. 형한테 더 잘 해야 하는데 성격상 잘 안 된다. 그래도 형이 늘 잘 받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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