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돌아왔더니 지난봄부터 집을 허물고 원룸을 짓기 시작한 앞집에는 아직 가림막이 처져 있고 우리 집 바로 뒷집은 이사를 갔다고 한다. 골목의 오래 살던 이웃들이 떠나고 그 자리엔 거의 모두 원룸이 들어서는 중이다. 만약 뒷집도 공사를 한다면 우리 집 옥상마저 가려질지 모른다. 집을 옮길 형편도 못 되고 마음도 없는 모친은 우리 집이 빨래 말리기가 얼마나 좋은데, 라고 종종 말한다. 마치 우리 집의 가장 큰 장점이 옥상인 것처럼.
놀러온 조카들이 그날 저녁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 말고 감탄하듯 “아, 햇볕 냄새!” 했다.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는 세탁물을 거실 창가에서 말린다. 조카들을 재우고 나니 다시 장맛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욕실에는 내일치의 빨래가 쌓였고 바닥 타일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비 오는 날 실내에서 말려서인지 수납장의 수건에서도 냄새가 나는 게 있고. 팔을 걷어붙이고 천장까지 핀 욕실 곰팡이를 솔로 문지르고 수건들을 팔팔 삶는다. ‘지하 봉천동’이라는 부제가 붙은 차창룡 시인의 곰팡이에 관한 시가 있다. “나도 몰래 벗이 된 이 있다네/소리없이 소리없이 찾아온 꽃이라네/향기 없는 향기 없는 냄새나는 꽃이라네/툭 털면 우수수 흩어질 것 같은/그러나 쉬 지워지지 않는 별자리라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비에 젖은 구두는 그늘에 말려 신어야 하듯, 일상의 작은 행운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하는.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