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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대선 큰강 건넜으니 뗏목은 이제 잊어버리자”

입력 | 2017-07-20 03:00:00

문재인 대통령-4당대표 회동





“테이블을 옮겨야 그나마 시원할 것 같은데….”(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날씨가 덥다. 그게 좋겠다.”(문재인 대통령)

1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대표를 기다리고 있던 문 대통령은 임 비서실장의 제안에 직접 나섰다. 여야 대표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로 한 테이블에 햇볕이 내리쬐자 문 대통령과 임 비서실장, 청와대 보좌진은 테이블을 나무 그늘 쪽으로 옮겼다.

이날 낮 상춘재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순으로 도착했다.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의 첫 회동은 당초 예정된 70분을 넘겨 115분간 진행됐다.


○ 주요 현안 완급 조절 나선 文

이날 회동에서 문 대통령은 탈(脫)원전, 최저임금 인상 등 속도 논란이 일고 있는 정책들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에 대한 소상공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박 위원장의 요구에 “소상공인과 영세기업의 지원 대책을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위원장은 또 문 대통령의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복원 지시에 대해 “감사원, 국가정보원, 검찰 등 중립이 필요한 기관이 참여하는 것은 정치보복, 야당 길들이기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제도 개선을 위해 운영되기 때문에 그런 우려는 안 해도 좋다”며 “혹시라도 정치에 악용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언제든지 지적해 달라”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인사에서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인사를 안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이혜훈 대표의 요구에도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시작으로 내년도 예산안, 개헌 등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인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추경에 대해 “국회에서 다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최선을 다해 (추경이) 국정운영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추경의 핵심 쟁점인 공무원 증원 예산 80억 원에 대해 “80억 원 전액을 다 (처리)해줬으면 좋겠다. 국회가 해주는 만큼이라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이혜훈 대표는 남북 군사회담 제안에 우려를 표했고,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대북 핫라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판문점에서 마이크로 소리 지르는 것밖에 안 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주제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한미 FTA는 재협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며 “이런 문제를 예상하고 이번 정부 조직개편안에 통상교섭본부를 포함했는데, 국회하고도 충분히 협의하게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 文, “선거 전 일 다 잊자”

이날 추 대표는 자신의 ‘머리 자르기’ 발언으로 불편한 관계인 국민의당을 언급했다. 추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저쪽(국민의당)은 ‘추’ 들어간 건 다 싫어한다고 한다. 고추, 배추, 부추, 3종 다 못 드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 대표는 자신을 대신해 임 비서실장이 사과한 것을 두고 “여당 대표가 막무가내로 대리사과를 당하기 전에 대통령도 여당 대표와 소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국민의당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 전 일은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대선이라는) 큰 강을 건넜으니 뗏목은 이제 잊어버리자”고 말했다고 박 위원장은 전했다.

이혜훈 대표는 여성관 논란에 휩싸인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대해 “오늘 안으로 해임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문 대통령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洪, “들러리 회담 안 해”

이날 청와대 오찬에 불참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충북 청주시에서 농가 흙더미 치우기 등 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했다. 홍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한미 FTA를 통과시킬 때 (민주당에서) ‘을사늑약’이니 ‘매국노’라고 했다. 자기가 집권하면 재협상하겠다고 했는데 재협상을 (미국 측에) 당했다”며 “첫 대면에서 얼굴을 붉힐 수 없어서 안 갔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청와대 들러리 회담에 참가하기보다는 수해 현장을 찾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적었다. 한국당 내에선 “홍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현안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회동 후에는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송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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