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영화 ‘타짜’를 히트시킨 최동훈 감독이 출판사 모임에 왔을 때 “이번 계간지의 내용은 뭐냐”며 편집자에게 묻던 게 불과 10여 년 전이다. 위세가 약해지긴 했어도 문학과 문화의 스피커 역할을 놓지 않았던 문예지는 이제 분명 그 기능이 줄어들었다. 사실 검색어 순위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시대에 한 계절에 한 번씩 내는 잡지란 어울리지 않는다. 1990년대 계간 ‘상상’의 편집을 맡았던 지평님 황소자리출판사 대표는 “요즘 트렌드의 속도로 봐선 (문예지 발행 간격은) 격주간지 정도가 맞을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짧아야 산다. 격주간지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최근 문예지들의 간격은 짧아졌다. ‘세계의문학’ 후속인 ‘릿터’나 매호 7000부 완판을 기록하는 ‘악스트’ 등은 모두 격월간으로 나온다. 정기구독자는 1000∼1500여 명으로 젊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18만 부가 나간 ‘82년생 김지영’이나 요즘 젊은이들의 키워드가 된 ‘한국이 싫어서’ 모두 원고지 500장 안팎의 경장편 소설이다. 출퇴근길 이삼일이면 한 권을 너끈히 읽을 만한 분량이다. 지난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든 책 가운데 소설집이 2권이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원고지 70, 80장 분량의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은 그간 대중 독자가 아닌 문학 전문 독자들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베스트셀러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최근 나온 소설집들은, 작가의 이름값 비중이 컸다고는 해도 수주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을 만큼 일반 독자들의 호응이 만만치 않다. 짧은 이야기의 소구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1세기에 글을 읽고 쓰는 독자들은 이렇게 문자의 역할 중 진공상태였던 공감을 찾아냈다. 두껍고 긴 호흡이었던 문예지가 얇고 밭게 바뀌고 원고지 1500∼2000장이었던 장편이 몸을 확 줄이는 변신 가운데에는, 디지털 시대 문자의 새로운 기능인 공감에 대한 발견이 깃들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김지영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