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브이 아버지’ 김청기 감독 당시 열정 하나만 갖고 무모한 도전… 서울 18만 관객, 한국 애니 첫장 열어 도전정신 사라지며 OEM 신세… 스토리 갖춘 토종 캐릭터 발굴해야
‘로보트 태권브이’를 피규어로 만드는 ‘추억 되살리기’ 프로젝트에 원작자인 김청기 감독과 피규어계 ‘드림팀’이 뭉쳤다. 왼쪽부터 김경인 작가(원형 제작), 홍성혁 작가(디자인), 김 감독, 이동한 작가(도색). 롯데마트 제공
14일 ‘로보트 태권브이의 아버지’ 김청기 애니메이션 감독(76)을 만난 곳은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본사 회의실에서였다. 김 감독은 국내 최고 피규어(모형 장난감) 제작 전문가들과 로보트 태권브이 피규어 제작회의를 하기로 돼 있었다.
태권브이의 생일은 영화가 처음 개봉된 1976년 7월 26일이다. 일주일 뒤면 만으로 41세가 된다.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18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첫 장을 열었다. 태권브이에 빠진 아이들은 저마다 태권도 동작을 흉내 내며 골목길을 휘젓고 다녔다. 피규어 총디자인을 맡은 홍성혁 작가는 자신을 “극장에서 태권브이를 보며 목청껏 주제가를 따라 불렀던 세대”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날 그의 모습은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려는 듯했다.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주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도 쏟아냈다.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도전하는 걸 주저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처럼 변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손해도 없고 이익도 안정적으로 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캐릭터 창조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태권브이가 토종 로봇 캐릭터로 아직까지 독보적 위치에 있는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주저 없이 ‘스토리’를 꼽는다. 아무리 잘 만든 캐릭터도 감정이 이입될 만한 배경과 이야기가 깔리지 않으면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태권브이 피규어 원형 제작을 맡은 김경인 작가도 “핫토이, 사이드쇼 등 글로벌 피규어 회사의 요직에 한국인이 포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제품화할 토종 콘텐츠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롯데마트는 완구 전문매장 ‘토이저러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40cm 크기의 태권브이 피규어를 판매한다. 24일부터 보름간 사전 주문을 받는다.
만화적 상상력은 노화까지 늦추는 걸까. 그의 환한 웃음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