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감사원서 수사의뢰 7월 14일 압수수색… 늑장수사 논란 검찰 “다른 방산비리 수사에 집중”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늑장 수사’ 논란에 휘말렸다. 감사원이 수사 의뢰를 한 지 2년여 만에 KAI 본사와 협력업체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데다 핵심 피의자를 1년 넘게 체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는 친인척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회사에 247억 원 상당의 일감을 몰아주고 용역대금을 부풀려 지급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를 받고 있는 KAI 직원 손모 씨 검거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6월 말 손 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아직까지 손 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에서 손 씨처럼 장기간 잠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부 도움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수사부는 손 씨 검거에 지난달부터 기존 인력 외에 강력부 검사 1명과 수사관 10여 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감사원으로부터 KAI 비리 의혹 관련 자료를 넘겨받고 2년여가 지난 후에야 본격 수사에 나선 점도 구설에 올랐다. 검찰은 2015년 2월 KAI 경영비리 관련 자료를 감사원에서 전달받았고, 같은 해 5월 손 씨의 혐의에 대해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검찰은 14일에야 KAI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감사원에서 자료를 넘겨받은 직후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금융거래 기록 추적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감사원 자료만으로는 강제 수사를 하기에 부족해 추가 조사를 하느라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수사부가 2015년에는 최윤희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연루된 방산비리 수사에, 지난해에는 롯데그룹 수사와 국정 농단 사건에 투입돼 KAI 수사를 할 수 없었다는 설명도 했다.
이달 들어 압수수색을 실시한 데 대해 검찰은 “KAI 측이 데이터 삭제 프로그램인 ‘이레이저’를 대량 구입해 증거 인멸에 나섰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KAI 측은 “주요 방산업체 보안업무훈령에 따른 조치였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KAI 경영상의 비리가 발견되지 않으면 신속하게 수사를 끝낼 것”이라며 “수사가 지역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수사를 지켜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수사에 대한 언급이 자칫 가이드라인 제시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산 비리 척결 의지가 강한 만큼 검찰 조사와 별도로 부처별 적폐 청산 관련 조사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