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주인공의 이름은 사니 브라운 압델 하키무.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혼혈이다. 가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니 브라운이 100m에서 우승할 때 3위로 들어온 케임브리지 아스카(24)는 아버지가 자메이카 출신이다. ‘번개’ 우사인 볼트의 고국인 자메이카는 인종적으로 서부 아프리카 출신이 다수다. 가나를 포함한 서부 아프리카계 혈통이 단거리, 동부 아프리카계 핏줄이 장거리에 강하다는 건 정설이다. 자메이카의 피가 흐르는 케임브리지는 지난해 리우 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계주 은메달 멤버이기도 하다. 올림픽 이 종목에서 아시아 국가가 2위를 한 것은 처음이다.
스포츠에서 유전자 결정론의 뿌리는 깊고 넓다. 중국의 류샹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허들 110m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만 해도 “동양인은 육상 단거리에서 우승할 수 없다”는 얘기가 진리로 통했다. 육상 트랙은 흑인들이 휩쓸지만 육상의 투척 종목은 백인, 특히 유럽 선수들이 강세다.
한국 남자 농구가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1996년이 마지막이고 남자 배구는 2000년이 끝이다. 육상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남자 100m 한국기록(10초07)을 세운 김국영(26)이 8월 런던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준결선만 진출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와의 격차가 크다.
일본 육상은 단거리 능력이 뛰어난 혼혈 선수들을 앞세워 400m 계주에서 다시 메이저 대회 메달을 노린다. 반면 한국은 다문화가정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도 아직 눈에 띄는 혼혈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일본 육상에 정통한 김영근 K-water 육상부 코치는 “국내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운동을 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반면 일본 육상은 선수층부터 두꺼운 데다 여전히 인기 높은 대학 역전(驛傳)마라톤에서도 특정 구간은 외국인이 학교를 대표해 뛸 정도로 개방적이다. 외국인이나 혼혈 선수가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본보가 2009년 일찌감치 연중 기획으로 진행한 시리즈는 ‘달라도 다함께―글로벌코리아, 다문화가 힘이다’였다. 스포츠야말로 다문화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