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머신.’
황재균(29·현 샌프란시스코)은 프로야구 롯데 소속이던 2015년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우승한 뒤 이런 별명을 얻었습니다. 결승에서 그와 맞붙은 NC 테임즈(31·현 밀워키)가 근육을 키운 황재균 몸매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는데요. (왜, 진짜 별명은 이게 아니라고 말을 못하니!)
별명에 흡족해 하는 황재균
이전까지 생애 최다 홈런이 18개(2009년)였던 황재균은 2015년 전반기에만 홈런 22개를 몰아치며 ‘벌크업’ 효과를 과시했습니다. 황재균은 그해 전반기에 348타석에서 15.8타석마다 하나씩 홈런을 날렸습니다. 타석 당 홈런 비율은 6.3%.
하지만 후반기가 막을 열자 황재균은 고개 숙인 남자가 됐습니다. 그가 후반기에 첫 홈런을 터뜨린 건 82타석이 지난 뒤였죠. 황재균은 이 홈런을 포함해 후반기 238타석에서 홈런 4개를 추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홈런 비율은 1.7%로 내려갔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건 황재균이 처음은 아닙니다. ‘홈런 더비(derby)의 저주’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 메이저리그에서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를 부르는 공식 명칭이 ‘홈런 더비’라 이런 이름이 붙은 겁니다. 홈런 더비 때는 문자 그대로 홈런만 쳐야 하기 때문에 스윙 폼이 커지게 마련이고 결국 후반기 성적도 나빠진다는 게 이 저주를 믿는 이들 주장입니다.
2017 MLB 홈런 더비에 참가 중인 애런 저지
올해 메이저리그(MLB)에서는 ‘베이브 루스의 재림’이라는 소리까지 듣던 뉴욕 양키스 신인 타자 애런 저지(25)가 이 저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지는 전반기 때 12.2타석마다 홈런을 하나씩 날렸지만(총 30개) 올해 홈런 더비에서 우승한 뒤 20일까지 31타석에서 홈런을 하나도 때리지 못했습니다. 타율도 전반기 0.329에서 후반기 0.115로 주저앉았습니다.
황재균이나 저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MLB 홈런 더비에 참가한 선수 82명 성적을 전·후반기로 나눠 비교해 보면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출루율+장타력), 타석 당 홈런 비율이 모두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그 평균은 모두 조금씩이라도 올랐는데 말이죠.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OPS 기준으로 MLB 홈런 더비 참가자 82명 중 59명(72.0%)가 성적이 내려간 건 사실. 그런데 이들이 전반기에 ‘너무 잘 쳤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황재균이 정말 후반기에도 홈런 22개를 때려 갑자기 40홈런을 넘게 치는 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저지도 홈런을 60개 이상 쳐내면서 MLB 신인 선수 최다 홈런 기록(49개)을 갈아 치우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전반기에 남들보다 정말 (홈런을) 잘 쳤기에 홈런 더비에 초대 받을 수 있었습니다. MLB 홈런 더비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는 해마다 8명(2014년은 1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후반기에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도 리그 평균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후반기에도 ‘올스타급’ 기량은 유지한 겁니다. 자기 전반기 성적보다 떨어지는 게 문제였을 뿐이죠.
통계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평균으로 회귀한다(regression to the mean)’고 합니다. 전반기에는 이 타자들이 ‘운이 좋아서’ 타격 성적이 평균보다 ¤았지만 후반기에는 반대로 평균을 향해 성적이 내려갔던 겁니다. 사실 야구 선수 타격 기록은 평균회귀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운이 꼭 반년 동안에만 바뀌는 건 아닙니다. 신인상을 타면 이듬해 부진하다는 ‘2년차 징크스’도 세상만사가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죠. 실제로는 첫 해 너무 잘하면 이듬해 조금만 성적이 떨어져도 ‘건방져졌다’는 평가가 따라다니지만 말입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평균회귀로 설명할 수 있는 일에 이런저런 구실을 대는 ‘회귀의 오류’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전반기에 너무 잘한 게 진짜 자기 실력은 아닌 것처럼 후반기에 좀 못한 것도 진짜 실력은 아니니까요.
장마에 축 늘어지고, 무더위에 지쳐 슬럼프에 빠지셨나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곧 다시 평균으로 돌아갈 테고, 그건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뜻이니까요. 거꾸로 지금 정말 잘 나간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다는 걸 ‘홈런 더비의 저주’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