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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의 取中珍談]류샤오보와 시진핑의 엇갈린 꿈

입력 | 2017-07-22 03:00:00


하종대 논설위원

지무불언 언무부진(知無不言, 言無不盡·아는 것은 다 말할 수 있어야 하니)

언자무죄 문자족계(言者無罪, 聞者足戒·설령 틀려도 죄가 없고, 듣는 이 삼가면 족하나니)

유즉개지 무즉가면(有則改之, 無則加勉·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 노력하라.)

마오, 비판의 자유 옹호 전술

2008년 12월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을 주도했다가 13일 세상을 떠난 류샤오보(劉曉波)는 생전에 법정 변론 과정에서 중국 고대 경구를 인용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중국의 만델라’로 불리는 그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면 더 나은 사회는 이룩할 수 없다”며 ‘국가정권 전복선동’ 혐의로 기소한 공산당에 항변했다.

그가 재판정에서 말하진 않았으나 이는 마오쩌둥이 만든 명구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마오는 시경(詩經)과 송나라 소순(蘇洵)의 명저 형론(衡論), 논어에서 각각 8자를 따서 만들었다. 1945년 4월 마오는 7차 당 대회에서 장제스와의 연합정부론을 주창하면서 자유로운 비판이 당내·외 단결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당 군사력의 4분의 1에 불과했던 공산당이 시간을 벌기 위한 선동술에 불과했다. 이듬해 시작된 4년의 내전에서 국민당은 패퇴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서방의 인권 시비를 피할 요량으로 감시를 완화한 중국 공산당 역시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통제를 강화했다. 류샤오보 역시 ‘08헌장’이 나온 이듬해 구속돼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유명해진 류샤오보지만 사실 그는 광장 사수를 외친 강경파와 달리 학생 철수를 주장한 온건파였다. 그는 폭력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가 공산당에 요구한 것은 인권 보장과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소박한 민주 가치로 중국 헌법에도 모두 명기돼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공산당과 차이가 있었던 것은 위로부터 개혁만 고집한 공산당과 달리 인민도 개혁을 추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상당수 서방 학자들은 이런 민주적 기본 가치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중국의 공산당 독재가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자오후지(趙虎吉) 전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최근 펴낸 ‘중국의 정치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저서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엘리트 충원 능력이 서방 정당보다 탁월한 중국 공산당의 생명력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올 상반기 런민일보에 게재된 시진핑 주석 기사는 2902개로 후진타오 집권 마지막 해의 1000여 개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고 19일 보도했다. 올가을 열리는 제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 언론의 ‘시(習)비어천가’는 갈수록 심화하는 양상이다. 시 주석 집권 이후 류샤오보처럼 인터넷에 비판적 글을 한두 개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10년 안팎의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인민의 입과 귀가 막히면

2010년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이후 중국의 인권 침해를 지적하던 서방 각국의 비판도 크게 줄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투옥됐다 결국 숨졌지만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가 침묵했다. ‘동양의 황제’를 꿈꾸는 시 주석의 야망이 점차 현실화하는 듯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아 태평성대를 이룬 왕조는 아직 역사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