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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전문기자의 人]김수연 목사, 책 좋아하던 아들 가슴에 묻고… ‘작은도서관’ 62개 세워

입력 | 2017-07-22 03:00:00

30년 넘게 ‘책 전도사’ 활동해온 김수연 목사




김수연 목사는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김종서의 후손이라는 데 큰 자부심을 느꼈다. “삶에서 가장 보람된 것은 책과 벗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김종서의 가르침을 설명하던 김 목사는 “좋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창=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윤영호 전문기자

농담을 즐기던 110kg 거구의 사내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목소리도 잠시 잠기는 듯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물 같은 어린 자식을 잃게 된 얘기를 할 때였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올리더니 “만 6세80일의 둘째 아들을 여기에 묻고 산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은 잘나가던 방송기자였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21일 강원 평창군 금당산 자락에 자리 잡은 산골마을. 맑은 물과 푸르른 숲 덕분인지 도시를 삼킨 찌는 듯한 무더위도 이곳은 비켜가는 듯했다. 김수연 목사(69·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안식처로 삼으려고 지은 작은 집에까지 찾아온 기자 앞에서 시종 쾌활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들의 추억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1984년 아들을 잃은 뒤 30년 넘게 책 전도사 활동을 해온 그는 ‘작은도서관…’ 대표를 맡아 전국 곳곳에 학교마을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을 세우고 있다. ‘좋은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독서지도 및 특강, 동화작가와의 만남, 인형극 공연, 작은 음악회 등 도서관 활성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가 또 애착을 갖는 일은 탈무드 명심보감 논어 도덕경 등 고전 4권을 포켓북 형태로 각각 찍어 1년에 10만 부 이상씩 배포하는 일이다. 과거 선진국의 독서운동에서 포켓북이 큰 효과를 본 것을 벤치마킹한 것. 전국 지자체의 축제 현장이나 도서관 개관식, 강연 등에 다닐 때마다 가장 먼저 그가 챙기는 게 바로 이 포켓북이다.

“탈무드는 지혜롭게 살라는 뜻에서, 그리고 명심보감의 글은 마음에 새기기를 기대하면서 선정했다. 그리고 인생을 알려면 논어를, 부끄럽게 살지 않도록 하려면 도덕경을 읽어야 한다.”

학교마을도서관은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산간벽지와 오지, 섬마을의 기존 학교 도서관을 개방해 마을도서관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91년 전북 남원 원천학교마을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 255곳에 책 2000∼3000권을 지원했다. 일부 학교 도서관은 리모델링도 해 줬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와 교직원공제회의 일부 후원을 받고 있다.

한 가지 원칙이라면 지원 대상 학교는 학생 수 100명 이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고, 어떤 대가도 거부한다. 심지어 시골 학교에 가서 도서관 개관 행사를 마치고 학교 측에서 점심을 제공하려고 하면 김 목사가 먼저 가서 음식 값을 계산해버릴 정도로 철저하다.

작은도서관은 문화 혜택이 부족한 주거 밀집 지역에 기존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는 방식으로 설립한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작은도서관은 2008년 KB국민은행 후원으로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전국 62곳에서 문을 열었다. 올해도 7곳에서 개관 준비에 한창이다.

작은도서관이라고 해서 대충 꾸미는 것은 아니다. 티크, 고무나무 등 원목 4가지를 이용해 제작한 서가와 책상, 열람석을 비롯해 어린이를 위한 쿠션 의자, 냉난방 시설, 컴퓨터 3대도 함께 제공한다. 한 곳당 1억 원이 조금 안 되는 예산으로 책의 품격에 맞는 품위 있는 작은도서관을 꾸미려다 보니 늘 빠듯하다.

“원목 수입업자에게 사정해서 거의 원가로 자재를 제공받아 가구 제작업자에게 제작을 맡기다보니 이젠 원목 박사가 다 됐다. 가령 고무나무만 해도 등급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필리핀산이 가장 싸다는 걸 알게 됐다. 다만 ‘작은도서관…’이 쓰는 것은 필리핀산 중에서도 가장 높은 트리플 A등급을 사용한다.”

그는 독서운동을 하는 만큼 독서에 관한 한 주위의 모범이 될 정도다. 지금도 목회 일 하랴, 작은도서관 사업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랴 바쁜 가운데서도 일주일에 꼭 책 두 권을 읽고 있다. 일찍부터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가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서울 강남구 한길교회에서 주일에 설교할 소재를 찾는 차원에서도 거르지 않는다.

그는 목회자로서도 조금 이질적인 존재다. 처음부터 ‘교회는 가까운 이웃과 지역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신앙 공동체’라는 생각으로 20가족 안팎, 60여 명의 교인을 목표로 했다. 또 일부 대형 교회처럼 헌금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목사는 양(교인)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이기에 교인에게 헌금을 은근히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교회 장로이자 ‘작은도서관…’ 이사인 박상대 씨(여행 전문지 월간 ‘여행 스케치’ 발행인)는 “헌금은 교회 건물 임차료를 겨우 낼 정도이고, 목사 사례금도 월 200만 원밖에 못 주지만 그는 교회 확장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교인 대부분이 김 목사의 독서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작은 공동체”라고 덧붙였다.

김 목사가 말한 보람은 소박했다. 작은도서관을 찾는 어린이들의 밝은 표정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낙관한다. 그는 “국가 발전의 속도는 국민의 독서량에 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학교마을도서관을 자주 찾은 시골 할머니가 뒤늦게 글을 깨쳐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는 소식이 들리곤 할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회의가 일었던 적도 있었다. 책 장사로 오해한 일부 학교장은 “책 살 돈 없다”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또 협조 요청 차 찾아간 일부 자자체에서는 “요즘 애들이 누가 책을 보나. 컴퓨터나 몇 대 사달라”고 외면했다. ‘쓸데없는 일이 늘었다’는 불만어린 표정을 짓는 일부 학교 관계자들을 볼 때는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주위의 도움을 일부 받기도 했지만 ‘작은도서관…’이 자리잡기 전에는 대부분 사재를 털어 가면서 하다보니 항상 자금이 부족했다. 당연히 매년 몇 차례씩 그만두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주변에선 김 목사가 지금까지 독서운동을 하면서 사재 30억 원은 털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세히 밝히진 않지만 주변에서는 그가 상당한 이재 수완을 발휘해 일찍부터 큰돈을 만졌다고 말한다. 대학생 시절엔 한 백과사전 세일즈맨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큰돈을 벌었고, 70년대 후반 해외 건설 붐으로 건설주가 폭등했을 때 여기에 투자해 큰 수익을 얻었다는 것. 초보 기자 시절 자신이 고용한 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

“지금은 다 베풀고 없다. 그러나 마음은 부자다. 아들의 죽음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더 감사한 것은 97년 말 외환위기 때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단하지 않고 독서운동을 계속해 왔다는 점이다. 기적이라고밖에는 더는 할 말이 없다.”

결정적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혼한 부인이 사업을 하면서 진 빚을 모두 떠넘긴 채 2000년 초 갑자기 증발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갔다. 결국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2004년 금당산 자락에 작은 집을 짓고 한동안 머물렀다. 이내 과거와 같은 열정이 되살아났다.

유교적 기풍이 강한 경북 안동시의 순천 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그가 목사가 되고 작은도서관 운동을 한 것은 ‘기구한’ 운명 탓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74년 충주MBC 기자가 된 이후 동아방송을 거쳐 80년 언론통폐합 때 KBS로 옮겨 96년까지 방송 기자로 일했다. 억울한 사람을 위한 방패막이가 되고 싶다는 의욕에서 택한 직업이었다.

그는 이른바 잘나가는 방송 기자였다. 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 교황의 특별기 안에 몰래 들어가 교황과 4분 51초 동안 단독 인터뷰를 하는 세계적인 특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말 집에 불이 나 혼자 남아있던 둘째 아들이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리다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끝내 숨지는 비극이 닥쳤다.

그는 교회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운 아내를 원망했지만 아내도 그보다 7년 전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당한 피해자였다. 폐암으로 친정 아버지를 잃은 직후 친정어머니가 친척에게 피살됐던 것. 결혼을 앞두고 찾은 점쟁이가 “가까운 사람이 많이 죽을 궁합”이라고 했던 말이 뒤늦게 떠오른 김 목사는 남은 큰아들을 지키려고 눈물을 머금고 이혼을 선택했다.

그는 이후 방황 끝에 기독교에 귀의했다. 우연한 기회에 가난한 동네에서 낮은 곳으로 임해 목회 활동을 하는 후배의 영향 때문이었다. 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둘째 아들을 잃은 슬픔도 책 기증 운동으로 승화시켰다. 책을 마음껏 사주겠다던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그를 책 전도사로 만든 것이다.

방송 기자로 일하는 틈틈이 책 보내기 운동을 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신학대학에 들어가 주경야독을 실천했다. 87년 신학교 졸업과 함께 한길교회를 세운 이후엔 책 보내기 운동을 작은도서관 세우기 운동으로 확장했다.

“아들을 잃은후 남은 삶을 의미있는 일을 하며 보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선택한 일이다. 18대조 할아버지 절재 김종서가 ‘삶에서 가장 보람된 것은 책과 벗하는 일’이라고 했다는 걸 나중에 알고 난 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책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전 국민에게 책 읽기를 권유하다 길 위에서 죽는 게 마지막 소원이다.”
 

▼전국에 ‘작은도서관’ 6000곳 넘었지만…▼

사서직원 있는 곳은 9%뿐… 공립 ‘작은도서관’ 43%가 운영 부실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 작은도서관에서 초등학생들이 동화를 쓰는 창작교실에 참여해 동화작가의 지도 아래 글을 쓰고 있다. 전국의 작은도서관 가운데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그나마 모범 사례에 속한다. 도란도란 작은도서관 제공

김수연 목사의 목표는 ‘건강한’ 작은도서관을 많이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면적도 어느 정도 돼야 하고 최소한 전문 사서 한 명이 상근하면서 지역 주민을 도서관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도서관을 지어 놓았는데 사람이 안 온다”고 얘기하는 것은 손님 유인책도 없으면서 손님이 안 온다고 투덜대는 꼴이라고 강조한다.

현실은 김 목사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친다. 전국에 작은도서관이 6000곳이 넘고, 매년 새로운 도서관이 개관하며 양적인 증가는 계속되고 있으나 질적인 성장은 미흡한 수준이다. 법적 설립 기준이 낮아 공간이 협소하고 장서가 부족하며 전문 사서도 없는 상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대부분이다.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위원장 신숙원)에 따르면 전국 작은도서관 가운데 사서직원이 있는 곳은 9.43%에 불과하다. 2200여 곳의 도서관은 직원 없이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운영되거나 아예 운영 인력이 없는 상황이다. 전문인력이 없는 작은도서관에 파견하는 순회사서제도를 운영하지만 839곳만 혜택을 받는다. 작은도서관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설립 주체별로는 사립이 76.3%를 차지한다.

지난해 기준 작은도서관 평가 결과 우수등급인 A등급(229곳, 3.9%)과 B등급(2343곳, 21%)을 받은 곳은 전체의 25%에 불과했다. 반면 운영이 부실한 D등급과 최하위등급인 F등급이 40.8%에 달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 운영하는 공립 작은도서관의 운영 실태가 뒤처졌다. 공립의 42.6%인 597곳이 D와 F등급을 받은 것. 소규모 동(洞)문고를 작은도서관으로 이름만 바꾼 탓에 공간이 협소하거나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작은도서관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할 뿐 운영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행 도서관법상 작은도서관 설립 면적 기준은 33m²(10평), 열람석 기준은 10석이다. 김수연 목사는 “건강한 작은도서관을 만들려면 법적 기준 면적을 최소 30평 이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단체에서 작은도서관 운영 활성화를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으나 우수 등급 위주로만 이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윤영호 전문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