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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벌레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새로워질뿐

입력 | 2017-07-22 03:00:00

◇곤충의 통찰력/길버트 월드바우어 지음/김홍옥 옮김/388쪽·2만 원·에코리브르




“이런 벌레 같은 놈….” 영화나 드라마에서 온갖 고난을 헤치고 다시 등장한 인물에게 흔히 붙는 표현이다. 실제로 벌레들의 생존력은 대단하다.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색 얼룩나방은 18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나무 색깔과 비슷한 밝은색을 띠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각종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1898년 영국 맨체스터 인근에서 발견된 얼룩나방 개체의 약 95%가 검은색이었다. 포식자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생존의 몸부림 덕분이었다.

이처럼 환경 변화에 적응해 나가며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각종 곤충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미국 일리노이대 곤충학과 명예교수로 생물학 대중화에 힘써 전문용어를 피한 과학서를 다수 집필해온 이력을 자랑한다. 이 책 역시 생소한 해충들의 이름을 제외하면 어려운 용어가 거의 없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기, 초파리, 진딧물, 도롱이벌레 등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해충(해로운 곤충) 20종류가 대표적으로 소개된다. 인간의 온갖 핍박과 괴롭힘에도 꿋꿋하게 살아남거나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인간을 위협하는 해충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과나무 재배에 악영향을 끼치는 ‘식자 곤충’을 박멸하기 위해 1970, 80년대까지 대부분의 사과 농가는 DDT를 살포했다. 이로 인해 포식자와 기생 곤충이 모두 죽었지만 새로운 해충과 진드기가 생겨 사과 농가들은 새로운 고통에 직면했다. 알풍뎅이를 죽이기 위해 ‘디엘드린’ 약물을 사용해 다람쥐 멸종사태를 겪은 미국 일리노이주의 사례 등을 통해 해충들의 강력한 생명력을 증명한다.

결국 해충은 박멸 대상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비(非)살충제적 방법으로 이들을 적절히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도나무뿌리진디’에 취약한 유럽의 양주용 포도나무를 미국의 포도나무종과 접붙이는 방식으로 해충을 극복한 프랑스 포도주 산업계처럼 말이다.

이상 기후와 생명체 교란 등이 뉴스의 일상이 됐다. 우리가 같이 가야 할 대상엔 곤충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