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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애틋한 추억, 앙꼬빵

입력 | 2017-07-24 03:00:00


앙꼬빵.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우리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유기농 재료로 빵을 만드는 가게가 있다. 지나갈 때마다 샘플 바구니에 빵이 있는지 보고 한 조각 집어 먹는다.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들, 영화관, 점심시간 우유와 같이 먹었던 앙꼬빵(단팥빵) 생각에 빠진다. 멜론빵과 크림빵 등은 이국적인 감성이 깃들어 있는 빵이지만, 앙꼬빵이 주는 편안함과 친근함은 다른 빵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지만 앙꼬빵의 긴 역사는 빵 그 이상으로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을 떠나 40년 이상 외국을 떠돌며 살다보니 바게트나 차바타(치아바타)같이 겉은 딱딱하고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빵에 익숙해져, 앙꼬빵 같은 빵은 지나간 추억으로 애틋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3년 전 우연하게 햄버거 가게를 열면서 부드럽고 고소하며 살짝 단맛이 느껴지는 빵을 찾기 시작했다. 샘플을 만들어 보면서 우유가 들어간 빵이 앙꼬빵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터, 우유가 들어가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나는 앙꼬빵이 서양식 빵과 동양 단팥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퓨전 푸드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200년 동안 폐쇄 국가였던 일본은 이미 식민지화된 중국을 보고 두려워 당시 15세밖에 안 된 메이지 황제를 앞세워 문을 열었다. 당시 서양인들에 비해 체구가 무척 작았던 일본인들은 밀려오는 서양 문물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해결책으로 정부는 서둘러 육류 제품의 섭취를 권장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오랫동안 금해왔던 육류를 쉽게 먹지 않았다. 이때에도 어린 황제가 본보기가 되었다. 한정된 일본 음식만 먹고 자란 황제였지만 정부 관료들의 요구에 따라 모든 것을 시키는 대로 따랐다. 공식적인 디너파티는 프랑스식으로 열렸다.

앙꼬빵은 약 120년 전 기무라 야스베에라는 사무라이에 의해 개발됐다. 도쿠가와 쇼군시대가 막을 내리고 갑자기 할일이 없어진 그는 먹고살기 위해 빵 만드는 법을 배워 사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딱딱한 서양 빵에 익숙하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연구 끝에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사케 만주처럼 술 효모를 넣어 발효시켜 빵을 만들고 단팥을 속에 넣어 구운 것이다. 1875년 4월 4일 벚꽃이 활짝 핀 무쿠오지마 행사에서 기무라의 부인은 소금에 절인 벚꽃을 앙꼬빵 위에 얹어 황제에게 처음 선보인다. 한 입에 반한 황제는 황실에 납품하도록 했다.

그날 이후 기무라는 오늘도 도쿄 긴자에서 앙꼬빵을 만들고 있다. 요즘도 일본 전역에서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잘 팔리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만화 ‘날아라 호빵맨’ 때문이다. 지난 15년 동안 2∼5세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아온 만화 주인공으로, 아이들이 ‘아빠’라는 단어보다 ‘호빵맨’을 더 먼저 배운다는 말도 있다. 야나세 다카시(1919∼2013)가 50세에 이르러 탄생시킨 호빵맨을 보면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쟁 이후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먹을 것이 없을 때다. 진정한 영웅은 종교나 이념, 나라를 떠나 음식을 공유해야 한다”면서 얼굴의 일부인 호빵을 떼어주는 호빵맨을 탄생시켰다. 이후 이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가 성장해 다음 세대를 이어가게 되면서 호빵맨의 인기는 더 오르고 서로 공감하며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