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성호 이익의 ‘와유첩발’에 나오는 말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한강 편 머리말에서 와유를 말한다. ‘이 책이 꼭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한강의 산수를 누워서 즐기는 와유가 되기를 바란다.’
사신단에 속하지 않는 한 조선에서 외국여행을 떠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수삼(1762∼1849)은 그렇게 중국을 다녀왔지만 더 많은 나라의 사정이 궁금했다. 명나라 지리서 ‘방여승략’을 읽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이 책에 나오는 80여 개 나라의 문물과 습속, 풍토 등을 시와 산문으로 풀어낸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를 남겼다.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뜻에서(遠遊志) 지었다’는 말이 사뭇 간절하다.
조선 후기에는 산수 유람에 관한 시문을 모아 편찬한 ‘와유록(臥遊錄)’이 유행하였다. 실제 유람에 참고하는 여행안내서 구실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시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람하는 용도로 많이 읽혔다. 제목 그대로 와유를 위한 기행문학 선집이었던 것. 서유구는 산수가 그려진 병풍을 ‘와유하게 하는 물건’이라 했다. 허균은 산천의 모양을 그려 넣은 지도를 보며 와유하곤 하였다.
서양에서 독서와유의 일인자는 철학자 칸트가 아닐까 한다. 칸트는 태어난 도시에서 평생 한 번도 멀리 여행한 적이 없었지만, 독서로 쌓은 간접 견문이 워낙 풍부하여 마치 살다가 금방 돌아온 것처럼 외국 사정과 풍광을 묘사할 수 있었다. 독서와유는 편한 자세로 어디서든 임할 수 있으며 돈이 많이 들지 않고 일정 조절이 자유로우며, 떠날 곳도 무궁무진하다. 사정상 휴가여행을 떠나기 어렵다면, 서점에서 여행기 고르는 것을 출발로 독서와유를 떠나볼 일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