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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우영]일보다 쉼의 혁신이 필요한 때

입력 | 2017-07-25 03:00:00

일과 쉼의 구분이 모호한 시대, 각국 노동 가치 재정립 노력
지지부진 공방 대신 과감한 개혁 추진해야
휴가일수 총량제 등 쉼의 방식 혁신하는 건 어떨지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일터와 쉼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디지털경제사회,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아닌 ‘뉴칼라’의 시대에 우리는 이미 놓여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올해를 ‘일하는 방식 개혁 원년’으로 선포하고 민관이 하나 되어 실천적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등 그 내용과 추진 속도가 놀랍다. 일본 정부는 기업 및 근로자가 개혁 실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지방노동국에 ‘일하는 방식 및 휴가 사용방법 컨설턴트’를 배치하여 무료 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여러 기업에서 플렉스타임 제도, 재택근무제 확대, 시간외근로 제로 운동 등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독일연방 노동사회부가 올 초 국민적 정책 요구 수렴과 노사정의 합의를 거쳐 발간한 ‘노동 4.0 백서’에는 국민 대상 심층 리서치를 통해 ‘노동에 대한 7가지 가치관’을 정리하고 있다. 이미 인더스트리 4.0을 선도하는 독일이 과거 노동과 직업 중심의 가치관을 넘어서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어떤가. 국회에서는 여전히 주당 최대 근로시간 52시간 법제화를 놓고 지루한 공방이 오가고,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의 공통 공약인 연 1800시간 근로시간 실현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대체휴일 확대나 날짜가 아닌 요일로 정하는 법정 공휴일 개선 방안 등은 좀 더 나은 쉼의 문화를 유인하는 신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질 높은 유럽의 그것과 비교할 때 여전히 아쉬운 면이 있다.

전문가들은 로봇과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일자리와 고용 형태의 변화로 직장에서의 근로 방식과 근로 형태에 불어닥칠 근본적이고 과감한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질적인 물음은 보다 지능화된 기계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일의 정의를 어떻게 새롭게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가올 미래에는 월급만으로 일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일로부터 받는 행복과 의미의 크기가 그것을 결정할 것입니다.” 주목받는 네덜란드의 신세대 저널리스트 룻허르 브레흐만이 최근 미국에서 출간한 ‘현실주의자를 위한 낙원(Utopia for Realists)’에서 언급한 말이다.

인간은 늘 자유(自由)를 갈망한다. 원래 자유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일에 있어서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나 현실적으로는 일과 쉼의 유연한 선택, 그리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수 있는 여건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요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 변두리 가쓰야마의 작은 빵집 ‘다루마리’가 혁신 사례로 소개된 적 있다. 천연균으로 빵을 만들어 맛이 좋기로 유명한 이 가게는 일주일에 나흘만 영업하고 매년 한 달간은 장기 휴가를 간다. 빵집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렇게 말한다. “빵만 보이고 세상이 안 보이면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재충전의 시간은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삶의 폭과 깊이를 더하며, 견문을 넓혀 사회의 움직임을 느끼는 눈을 기를 수 있게 해 준다.”

유럽의 근로자들은 대개 한 달 또는 그 이상의 긴 휴가를 즐긴다. 그들은 아프리카 자연을 탐험하고, 인도양의 외딴섬에서 재충전을 하거나 그동안 미루어 왔던 하고 싶었던 여러 일을 하며 쉼을 통한 일의 의미를 되찾는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

1930년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우리 모두가 2030년까지 주당 단 15시간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로선 먼 얘기로 들리지만 일과 쉼의 질적 향상의 시대가 올 것임을 미리 암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하는 방식’보다 ‘쉼의 방식’을 혁신하는 역발상을 해보면 어떨까. 흩어져 있는 법정 공휴일을 정비하여 황금연휴니 하는 혼잡한 기간을 가급적 분산하는 한편, 한 번에 최소 20일 이상 휴가를 보장하는 ‘연간 휴가일수 총량제’ 도입을 검토해 볼 만하다. 물론 사업장별 노사 합의를 전제로 일터 형편에 맞추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쉼의 방식 변화는 궁극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한 발 더 나아가 자연스럽게 질 높은 일자리 증가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때때로 문 밖을 나가 보면, 달리는 자는 땀을 흘리고, 말을 탄 자는 빠르게 지나가며, 수레와 말은 사방팔방에서 부딪치며 뒤섞인다. 그러나 나만은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천천히 걷는다.’ 18세기 학자 이덕무의 산문 ‘원한(原閒)’에 수록된 이 문장이 쉼의 여유와 품격을 떠올리게 하는 여름이다.

이우영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