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사회부 차장
세월호 침몰 여파는 해양경찰청 해체와 안전처 출범으로 이어졌다. 당시 여야는 한목소리로 재난 컨트롤타워 강화를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안전처를 폐지한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개별 부처가 아니라 청와대가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뜻은 옳다. 하지만 재난은 발생 후보다 발생 전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행안부가 최선의 답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안전처 출범 후 내내 말도, 탈도 많았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는 무기력했고, 경주 지진 때는 뒷북을 쳤으며, 강원 산불 때 남의 집 불구경하듯 했다. ‘폐업’을 자초했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박인용 안전처 장관은 졸지에 개업에, 폐업 신고까지 하는 ‘사장’이 됐다. 지난해 말 교체 직전 눌러앉은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역사에 유일무이한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떼었다 다시 붙인 안전은 이제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가 맡는다. 안전처라는 독립기관의 위상도 위태로워 보였는데 흡수된 안전조직이 전체 정부 안에서 과연 제 목소리를 낼지 걱정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안전업무에 얼마나 뛰어난 인력이 올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재난안전관리본부에 충분한 권한이 보장돼야 한다. 들리는 말로는 벌써 재난안전관리본부의 인사 및 예산권 독립을 놓고 적잖은 진통을 치렀다고 한다. 일단 실장급은 장관이, 국장급 이하는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권한을 갖는 걸로 정리됐지만 두고 볼 일이다.
재난안전관리본부는 기존 세종청사를 쓴다. 다만 장관이 서울청사에 있는 걸 감안해 서울의 종합상황실 근무인력이 대거 늘어난다. 행안부가 세종으로 내려갈 때까지 이처럼 불안한 두 집 살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처 폐지와 행안부 출범이 확정될 무렵 안전 관련 전문가 몇 명과 나눈 말이다. 행자부에서 행안부를 거쳐 안행부로 바뀌고 도돌이표처럼 다시 행자부와 행안부가 됐으니 순서(행자→행안→안행→행자→행안→?)대로면 다음 정부 때 안행부 아니냐고. 어쩌면 5년 뒤 ‘도로 안행부’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 우스갯소리였지만 썰렁했는지 아니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건지 듣는 이들의 웃음소리는 크지 않았다.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담긴 안전정책은 예상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개헌 때 국민안전권을 명시하고 국가위기관리센터의 역할도 강화하기로 했다. 주요 선진국처럼 독립적인 재난사고 조사위원회도 설치키로 했다. 교통사고 화재 승강기 등 일상 속 안전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계획이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등 굵직한 현안을 맡은 행안부가 추진동력의 균형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5년 뒤 도로 안행부를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