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유교 정신을 상징하는 은행나무.
‘은빛살구’를 뜻하는 은행은 중국 북송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한 은행나무의 이름이다. 은행 이전에 은행나무의 이름 중 가장 즐겨 사용한 것은 오리발을 닮은 잎을 강조한 압각수(鴨脚樹)였다. 은행나무의 또 다른 이름 공손수(公孫樹)는 은행나무가 손자 대에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이는 은행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 아주 늦은 시기에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다. 특히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정자 혹은 정충을 통해서 수정한다.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일본의 히라세 시쿠고로(平瀨作五郞)였다. 현재 도쿄대 부설 고이시카와 어약원에는 그가 정자를 발견한 수령 28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 은행나무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알려주는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불교와 유교와 관련한 공간에서 아주 나이가 많은 은행나무가 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불교와 유교의 수용 시기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살구나무를 의미하는 ‘행(杏)’을 은행나무로 수용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나는 이러한 사례를 나무의 ‘문화 변용’이라 부른다. 조선시대의 창덕궁을 비롯한 궁궐이나 조선시대 국립대학 성균관, 각종 관청, 소수서원을 비롯한 전국의 서원 등지의 은행나무는 살구나무를 은행나무로 인식한 문화 변용의 사례다. 은행나무는 공자가 살구나무 밑, 즉 행단에서 제자를 가르친 정신을 상징한다. 특히 성균관과 소수서원 및 맹씨행단의 두 그루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 은행나무의 생태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유교의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