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이효리는 인도 마이솔의 요가 지도자가 탄생시켰다는 ‘아쉬탕가 요가’를 일반인들에게까지 회자되게 한 장본인이다. 이효리가 하면 뭐든 유행이 되지만, 역으로 이효리는 늘 유행이 될 만한 걸 한다. 다이어트 요가에 질린 사람들이 슬슬 본토 요가로 관심을 돌리던 무렵, 그녀는 그런 수련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복귀해서도 “집착의 결집인 방송으로 얻은 괴로움을 요가로 내려놨다”며 프로 뺨치는 실력으로 전국의 요가 강사들에게 ‘의문의 일패’를 안겼고 말이다.
다 가진 이효리가, 요가까지 잘하다니. 그런데 이젠 대중이 그런 걸 원한다. 본업이 멋진 건 기본, 취미도 제대로 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시영이란 배우를 다시 봤던 것도, 복싱이란 취미 때문이었다. 프로 선수로까지 뛰었으니 본업이 뭔지 헷갈릴 정도로 잘했다.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다부지게 링 위에 선 여배우라니. 마치 인생은 원래 이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사는 거 아니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그 배우의 아우라가 달라졌다.
가디언 전 편집국장이 쓴 ‘다시, 피아노’란 책이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한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를 완주하기까지의 기록이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편집국장이 쇼팽이라니, 과연 일은 제대로 했을까 싶지만 그는 위키리크스 외교문건 폭로 같은 특종을 지휘하고 가디언의 디지털화를 이끈 누구보다 유능한 리더였다. 그런 그가 매일 출근 전 20분, 하루를 견딜 힘을 얻기 위해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장면은 굉장한 울림을 준다. 탁월한 일과 완벽한 취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그 사회의 저력과 품격까지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쇼팽의 난곡(難曲)을 때려눕혀 버리는 편집국장이 가능한 ‘사회적 토양’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동경해 왔던 것들이다. 입시와 상관없는 취미는 뒷전인 교육, 오랫동안 일중독이 훈장이던 문화 속에선 불가능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달라지고 있다. 고난도 요가를 선보이는 가수나 링 위의 여배우처럼 삶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취미의 진가에 눈뜬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그렇다. 본업만큼 취미를, 물질만큼이나 여가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직 무르익어야 할 제도적 여건이 많지만 피아노 치는 편집국장도 더는 먼 꿈만은 아닌 시대. 오랜만에 요가 매트를 다시 펼쳐본다.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