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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눙친… 장욱진의 ‘4色’

입력 | 2017-07-25 03:00:00

올해 탄생 100주년… 8월 27일까지 ‘인사동 라인에 서다’展




장욱진 화백이 경기 용인 신갈에 살던 시절(1986∼1990년).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정신적 해방감이 작품에 반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나문화재단 제공

장욱진 화백님.

화백님이 1973년 그리신 ‘나무와 새와 모자’란 그림을 오늘 봤습니다. 나무에 네 마리의 새가 앉아 놀고, 집 안에는 엄마와 어린 아들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었죠. 그 나뭇잎의 연두색이 유독 환했습니다. 화백님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친근함입니다.

강한 평면성이 특징인 명륜동 시절 대표작 ‘소와 나무’.

전시에 다녀왔어요. 가나문화재단이 다음 달 27일까지 여는 ‘인사동 라인에 서다’전(展)에요. 화백님 탄생 100주년(1917∼1990)을 맞아 개인 소장자들이 큰 맘 먹고 전시를 허락한 작품들이 많았어요. 나무와 새와 모자는 미국의 소장자가 내어준 그림이래요.

이 자리서 화백님의 장녀인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을 만났습니다.

“딸인 나도 처음 보는 작품이네요!”

담담한 표현의 수안보 시절 대표작 ‘여름’.

전시는 화백님이 살았던 동네를 시기별로 나눈 것이었어요. △경기 남양주시 덕소 시절(1963∼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시절(1975∼1979년) △충북 충주시 수안보 시절(1980∼1985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갈 시절(1986∼1990년).

화백님, 이사를 많이 하셨네요. 따님이 말씀하셨어요.

“살던 동네가 계속 개발됐거든요. 덕소 시절, 모더니즘 사조가 밀려들 때 아버지는 그림의 정체성을 찾는 고독한 싸움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그림의 질감이 강해요. ‘너는 뭐냐, 나는 뭐냐’는 말을 하도 많이 하셔서 한번은 제가 대들었어요.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냐’고.”

가정이 화목했는지도 궁금했어요.

“아버지는 항상 쪼그리고 앉아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했어요. 그 점을 미안해하는 아버지를 우리 형제들은 가엾게 여겼고요. 한번은 어머니가 그러셨죠. ‘너희는 학비는 나한테 받아가면서 왜 아버지 편만 드느냐’고요.”

강렬한 질감을 보이는 덕소 시절의 대표작 ‘진진묘’.

그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그림 ‘진진묘’(1970년·진진묘는 장 화백의 부인 이순경 여사의 불교식 이름)를 오늘 봤습니다. 지금 100세를 바라보는 이 여사(98)가 어느 날 “다른 화가들은 부인 초상화도 잘 그려주는데 왜 당신은 안 그려주느냐”고 하자 덕소에서 그리셨다고요. 그림 속 여사는 영락없는 여자 불상입니다. 화백님이 17세 때 만공선사가 계신 충남 예산군 수덕사에서 6개월 동안 정양(靜養)하신 영향인가요.

색의 조화가 이뤄진 신갈 시절 대표작 ‘새’. 가나문화재단 제공

0호(18cm×14cm) 크기의 작은 그림이 많아 오순도순 대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참, 전시명이 왜 ‘인사동 라인에 서다’일까요. 술을 사랑했던 화백님에게 인사동은 곧 술 골목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이 여사가 자제분들에게 지금도 말씀하신대요. “술이 너희 아버지를 많이 도왔지”라고. 화백님의 그림 100여 점을 보고 나오며 생각했어요. ‘장욱진 화백님과 술 한잔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고.

하늘나라에도 생일잔치가 있을까요? 100세 생일(1917년 11월 26일생)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장욱진 화백님!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