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갤럽의 삶을 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한 ‘횡설수설’ 칼럼이 실린 동아일보 1984년 7월 31일자 1면.
갤럽은 대학 때부터 과학적 여론조사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1932년 장모인 올라 배브콕 밀러가 출마한 아이오와 부주지사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조사했고 이를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누구도 승리를 점치지 않았던 밀러는 예상을 뒤엎고 압승했다.
‘여론조사의 아버지’로 꼽히는 조지 갤럽. 위키피디아 캡처
갤럽이 설립한 미국여론연구소가 모태가 된 ‘갤럽인터내셔널’에 각국의 조사기관이 회원으로 참여해 다양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984년 7월 26일 갤럽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이름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계속 등장한다. 그해 7월 31일자 동아일보 ‘횡설수설’ 칼럼에선 ‘갤럽의 타계를 놓고 민주주의와 여론의 무게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양자는 그만큼 깊은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금도 유효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