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진아는 여리고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이것을 좀 엄밀히 따져 보면 정서가 세세하게 분화되지 못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감정을 자극하면,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각각 그 감정에 맞는 처리를 하지 못하고 모두 ‘울음’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슬퍼서 우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아프다고, 많이 걸어서 힘들다고, 운동회 날 덥다고, 친구가 서운한 말을 했다고, 조금 부끄러웠다고 모두 울어 버리면, 친구 관계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갑자기 울어 버리면 그 주변 친구들은 졸지에 가해자가 되고 우는 아이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얼떨결에 가해자가 된 친구들이 어른들에게 혼나기라도 하면, 솔직히 친구들은 그 아이와 안 놀고 싶어진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로 인해 놀이가 중단되고 아이를 달래던 친구들도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그 아이를 만만하게 여기고 일부러 짓궂게 놀리기도 한다. 놀이의 흐름을 끊는 탓에 ‘기피 대상 1호’가 되어 우는 아이를 따돌리고 자기네끼리 그룹을 이루어 노는 일도 생긴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가 울면 울음을 멈추게 하려는 데만 급급하다. 큰 아이가 울 때는 더욱 그렇다. “왜 울어. 그만 울어. 바보처럼 왜 울어” 하며 혼내기도 한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는 불편한 감정 때문인데, 감정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지 않고 아이를 윽박지르고 나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의 미숙한 감정과 정서는 개선되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은 우선, 감정의 정체부터 알려주어야 한다. 진아가 울음을 터뜨린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부끄러웠구나” 하고 아이 감정의 실체를 가르쳐준다. “너 우니?” “또 삐쳤니?”보다는 “억울했겠구나” “서운했구나”같이 그때 상황에 맞는 감정을 인식시키고 공감해준다. 그러면 아이도 어느 정도 감정이 누그러진다. 그 다음은 감정을 언어로 대체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슬플 때 울거든. 그러니까 똑같은 일이 다음번에 생기면 ‘아, 창피해. 부끄럽다, 그만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거야” 하고 감정을 말로 처리하도록 가르친다. 아무 말 없이 울거나 삐치면 친구가 너의 마음을 알기 어렵다는 점도 말해준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주고, 서툴러도 짤막하게나마 서운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너의 감정을 말해도 상대가 그것을 100%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러두는 것이다. 분명 부끄럽다고 말해도, 서운하다고 말해도, 기분 나쁘다고 말해도 “야 그게 뭐가 그러냐!”라고 받아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내 감정을 인정하든 안 하든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독려해 주도록 한다.
감정과 정서의 발달은 후천적이다. 때문에 어른들도 평생을 두고 질적으로 다듬어가는 것이 숙제이다. 지금 내 아이가 감성은 풍부하나 표현하는 것이 많이 미숙하다면, 잘 가르쳐줘서 발달시키면 된다. 단, 자세하고 친절하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