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보근 기자 paranwon@donga.com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흡연충과 예민충 등 벌레가 소환되고, 이사 가라는 말이나 극혐이라는 표현은 예사였다. 끝끝내 ‘너 누구냐? 찾으러 간다’는 섬뜩한 내용도 달렸다. 결국 익명의 이웃에 대한 분노와 앙금만 남긴 채 안내문은 떼어졌고, 아파트 곳곳에 금연구역 과태료 안내 스티커가 붙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더운 여름 창문을 열고 생활을 하는데 아래쪽에서 연기가 올라온다거나 화장실에서 씻는데 환기구를 통해 냄새가 스멀스멀 내려온다는 증언은 충분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럼 어디서 피우라는 거냐’고 절박하게 외치는 흡연자들도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정부에서 피우라고 손쉽게 담배를 쥐여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대책 없이 내몰기 바쁘다. 실제로 우리 집 주변 앉을 곳 중에 흡연금지 스티커가 붙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간접흡연의 고충을 호소하는 이웃 간 민원은 매년 수백 건씩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한 지역에서는 이 문제로 주민들 사이에 칼부림 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흡연을 둘러싸고 원망과 증오가 쌓여 이웃사촌이 ‘이웃 원수’가 되어가는 동안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하지만 담뱃세 대부분은 국세와 지방세로 들어가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데 쓰인다. 그나마 담뱃세로 흡연자를 위한 사업을 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3조 원이 넘는 예산 가운데 금연과 직접 관련이 있는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예산은 기금 전체의 5%도 채 되지 않는다. 흡연질환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나 흡연자 건강 보호, 흡연장소 환경 개선에 관한 예산은 보이지 않는다. 금연정책 개발 및 지원으로 한 해 쓰는 돈이 그 많은 세금 가운데 5억 원뿐이라는 점은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실제로 정부는 담배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판매 제한이나 광고, 진열 금지를 추진하지 않는다. 흡연부스 설치 계획도 없다.
얼마 전 한 다국적 담배회사가 담배를 데워 연기를 없애는 기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품 개발에만 10년간 400명이 넘는 과학자와 전문가를 고용하고 3조 원 넘게 투자했다고 한다. 정작 우리 정부는 담배 판매와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혁신적인 방안을 만드는 데 충분한 예산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시민들 간에 높아지는 분노와 증오의 대가는 언젠가 치러야 한다. 정부가 손쉬운 세금 장사에 몰두하고 근본적인 해결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어느 날 천문학적인 사회갈등 계산서를 받아들게 될 것이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