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박물관’이라는 흥미로운 번역서가 있습니다. 여러 작가들이 자신에게 특별했던 박물관에 관해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세상에 참 신기하고 가보고 싶은 박물관이 많다는 데 우선 놀랐고, ‘만약 이런 기획을 제안받는다면 어떤 박물관에 대해 써볼까?’ 하고 상상하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책 뒤에 “박물관은 우리가 과거를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현재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미래를 열어갈 통찰을 얻는 곳이다”라는 글귀를 봤습니다. 순간 저는 이 문장에서의 ‘박물관’을 ‘신문’으로, ‘과거’를 ‘오늘’로 바꿔서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제가 쓰고 싶다고 느낀 ‘신문박물관’에 관해 생각하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적에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부모는 세 딸의 교육을 어떻게 시킬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신문 구독. 그 후 신문이란 항상 집에 있는 것, 매일 읽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진실과 거짓, 통속, 현안, 역사, 사회, 문화, 날씨,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그 모든 게 담긴 ‘매일의 책’이. 지금도 네 종류의 일간지를 날마다 읽고 생각하고 추측합니다. 보이는 것과 숨겨진 것에 대해서, 다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작가나 개인으로서 사람은 사회와 무관할 수 없으며 먼 데 있어도 타자는 연결돼 있다는 깨달음을 준 매체도 신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을 수도 있지만, 잉크 냄새 흠뻑 밴 이 얇고 큰 정기 간행물은 모든 텍스트들처럼 언제나 독자를 필요로 합니다. 책이든 신문이든 헌신적으로 읽다 보면 적어도 한 가지는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인지.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이라는 책에서 아흔 살의 피아니스트가 이런 조언을 했더군요. 뭔가에 깊이 몰두하다 보면 삶이 바뀔 수도 있다고. 인생의 관건은 “관심 가는 것을 꼭 붙들고 결실을 맺을 때까지 매달리는” 거라고 말입니다. 오래 신문을 읽어 오다가 저는 몰두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삶이 바뀐 겁니다.
신문(新聞)이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사실이나 해설을 널리 신속하게 전달”하고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금보다 명쾌하게 보도해 준다면 이 디지털 시대에도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애수를 갖게도 하는 친숙한 증명의 매체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을 기록하고 오늘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여름방학을 맞은 조카들과 옛 동아일보 사옥에 있는 신문박물관에 같이 가볼까 합니다. 일간지의 어린이 교육면을 이제 읽기 시작했거든요. 좋은 책들, 현전하는 세상을 매일 아침 활짝 펼쳐 보여주는 신문 같은 읽을거리들과 함께 7월 마지막 주도 뜻깊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조경란 소설가